우리의 삶은 늘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그것이 당연한 듯이 지내다 보면 삶의 구석 구석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건강, 가정, 관계, 영성 등 모든 부분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의 무너진 삶을 어떻게 재건해야 할 것인가?
1.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구약의 모든 내용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즉,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 구약이다. 특별히 구약의 리더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에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행하시는 사역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1장에 나온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가 닮고 따라야 할 표본이다. 그렇기에 그런 기도의 삶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기도는 우리가 따라야 할 표본 이전에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 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이 사실을 놓치고 느헤미야의 기도를 따라하면 우리는 쉽게 절망하고 좌절한다.
왜 그러한가? 우리의 대부분은 그런 기도의 수준까지 가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은 고사하고 나를 위하여 조차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하여 누군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중보 기도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딤전2:5), 그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희망이 생기고, 용기가 생긴다. 특별히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밝히 깨다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재건의 힘이 가해 질 수 있다.
느헤미야는 조국 이스라엘 땅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완벽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 4개월 동안 기도의 응답이 없었다. 이런 일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위한 기도도 아니었고, 기도 중에 백미를 이루는 완벽한 기도였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
이럴 때에 그는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했다. 구체적으로 아주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나를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자만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결코 외면치 않으신다는 확신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태도이다.
이런 자의 특징은 삶의 작은 변화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 왕이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자신이 한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한 3가지(비자, 재목, 군대)를 바로 그 자리에서 요청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왕의 질문에 즉시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분명히 왕이 이렇게 물어 올 날이 있을 것을 미리 머리에 그리고(simulation) 기도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도를 한시도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잘 나타내 주는 좋은 예이다.
삶의 무너진 부분의 재건을 원하고 기대하는가? 내 기도 이전에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사 반드시 우리의 삶을 재건케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는다.
2. 나의 상상과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라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에게 ‘조국 이스라엘의 재건을 도와 달라’는 요구는 어찌 보면 쉽게 요청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왕의 최측근인 경호실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왕 앞에서 경호실장이 근심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해고의 사유 뿐 만이 아니라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왕이 ‘네 얼굴에 어찌하여 수심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목숨을 건 도박행위를 한다. 그것은 왕에게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에 탔다’는 말을 한다. 이것이 왜 엄청난 대답인가 하면, 당시의 아닥사스다 왕은 굉장히 포악한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이전의 페르시아 왕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왕의 조상을 욕되게 하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느헤미야의 목숨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왕이 뜻하지 않은 대답을 한다. 그것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도움의 손길을 그에게 내민다. 이것이 우리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있을 수도 없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만일 우리의 삶에 상식적인 수준의 일만 벌어지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기보다 실패하지 않는 수준의 작은 믿음으로 인함일 수 있다. 나의 신앙의 그릇과 수준이, 넒고, 깊고, 높아지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내 삶을 구체적으로 철저히 준비하며 그 분께 나의 삶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찬에게는 결코 실패가 없다. 다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 믿음이 오늘의 우리의 삶을 재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다(엡2:10). 우리는 그의 작품이다. 이 땅에 그 누구도 우연히 태어난 자는 없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치가 자신의 생명과 바꿀 만큼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토록 외치고 있는 것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본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할 때에 우리의 삶이 재건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하나님이 내 삶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는가? 언제, 무슨 일이었는가?
3. 내가 생각치도 못한,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일이 있었는가?
4. 내 지금 모습을 하나님이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 것 같은가? 기쁨, 슬픔, 기특함, 안타까움 etc...
5. 내가 아주 힘들 때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6. 내 삶에 가장 무너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어떻게 회복이 가능한가?
7. 느헤미야의 기도와 내 기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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