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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07.17.2022. 에베소서 강해(17) 순종의 이유 엡6장 1~9절

본문은 부모와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많은 경우 이 본문을 두고 내가 어떻게 순종을 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한다. 공경은 어떤 의미이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남을 대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방법적이고, 실천적인 부분으로 적용한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그 모든 순종을 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명하신 순종의 본질적인 의미를 놓친다면 이 역시 단순한 종교 생활에 그치게 될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순종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는 흡족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성경에 그 대표적인 사례도 등장한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 아들이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과 달랐다. 그는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후에는 작은 아들 몫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 부모에게 순종한 아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착한 아들이라 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불만을 가진 큰 탕자라 얘기한다. 왜 그런가. 부모에 대한 순종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바울이 말하는 ‘부모와 상전에게 순종하라’는 본질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복종과 순종의 개념을 정리한다. 복종(휫포탓소)’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권세 아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반면에 순종(휘파쿠오)은 ‘위에서 하는 말을 아래 사람이 당연히 들어야 하는 경우’에 이 단어를 사용한다. 즉, 부모에게 순종하고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말한 ‘부모 자식의 관계는 논리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 성경이 얘기하는 순종이다.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1절) 1절의 ‘옳으니라(디카이오스)’는 성경의 아주 많은 곳에서 ‘의인’으로 번역했다.(롬1:17) 그러니까 성경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으로 여길 만큼 제일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적어도 이것은 지켜야 한다는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의 첫 번째에서 네 번째 계명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세상 속에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중에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부모 공경’이다. 이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살인, 거짓, 간음, 도둑질 보다 위에 있다. 하나님은 이것을 지키면 의인이라고 말할 만큼 강조하셨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는 신자답게 살기 위하여 모든 거짓과 도둑질과 간음을 피하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그렇게 사는 것으로 스스로가 하나님의 명을 잘 지키는 신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은 다르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부모 공경,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교회 봉사나 십일조 생활 보다 훨씬 더 위에 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첫 단추이다. 그것이 본질로 가는 길이다.

그럼, 부모가 용납할 수 없는 부모, 공경할 수 없는 부모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순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분적 순종이 가능한가. 성경에는 부모 순종에 제한을 두고나 예외 조항이 없다. 그저 ‘부모에게 순종해라. 공경해라’만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오해 혹은 다른 해석을 덧 붙일까봐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 한번 더 사용했다. 그것은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라’다.(5절) 이것이 왜 부모의 자질과 인격과 상관없이 순종하라는 말을 대변하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종들아’라는 단어는 ‘노예’이다. 당시 노예는 주인의 물건이었다. 인격이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실 리가 없다. 노예 제도는 악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종들아, 이제 일어나 노예 제도를 폐지하자’라고 하지 않는다.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당시의 시대적 상위 개념인 제도에 순종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롬13:1)고 한다. 여기서 ‘위’란 로마를 가리킨다. 당시 로마 황제는 폭군이었던 그 ‘네로’였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죽이고, 사자 밥이 되게 하던 악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바라고 얘기한다. 오히려 순종 보다 강력한 ‘복종’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이 정한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옳지 않은 부모, 인격이 덜 성숙하고, 용납할 수 없는 부모일지라도 순종해야 하는 이유이다. 바울이 비합리적이고, 옳지 않고, 반기독교 적인 로마에게도 복종하라고 얘기했다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마땅히 섬겨야 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더욱이 마땅하다. 이것은 내 상식, 이성, 논리 보다 위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우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또한 아랫사람에게 형편없는 상사일지라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이다.

왜 하나님이 이 어려운 순종을 요구하시는가. 그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다. 주의 나라는 우리의 논리와 이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그 분이 전적으로 옳다는 믿음으로 이루어내신다. 이를 행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 이 겸허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복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본문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장 18절)를 화두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부부간의 복종, 부모와 상전에의 순종을 말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 성령 충만이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무언가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충만하게 기쁨이 차 올랐다면 그것을 복종과 순종으로 이 땅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 충만의 삶이다.’

내가 오늘 밥을 먹는 이유는 그 밥심으로 오늘을 살아내기 위함이다. 성령 충만은 내 만족을 위함이 아니다. 이 충만함으로 이제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 우리가 순종할 수 없는 자에게 기꺼이 순종할 때에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열리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기억 중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불순종은 무엇이었나

3. 순종할 수가 없었지만, 순종했더니 후에 좋은 결과를 빚었던 것이 있었다면 나누어 보라.

4. 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하는가. 실례를 나누어 보라.

5. 기독교인의 사명으로 현 정권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분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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