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신자가 갖추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6가지로 얘기한다. 그것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이다. 이중 앞의 3가지는 기본적인 무장이고, 나머지 3가지는 진보된 무장이다. 먼저, 앞의 3가지를 살펴본다.
1. 진리의 허리띠
이것은 무장의 가장 기초다. 이것을 미리 갖추지 않으면 후에 아무리 좋은 무기를 장착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허리띠를 매라는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진리의 허리띠인가. 이것을 살펴보기에 앞서 진리에 대한 정의를 바로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것을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철학적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당연히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내린 그 정의 때문에 실제 진리가 내 눈 앞에 펼쳐져도 그것이 진리인지 모른다. 또한 이것으로 인하여 참 진리를 부정하는 사고가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실제의 진리는 다수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것, 객관적으로 승인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인간들이 갖고 있는 헬레니즘의 세계관이다.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 중에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참 진리가 눈에 보인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라고 하셨다.(요14:6) 예수님은 본인이 진리인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거나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예수님의 변증을 자신이 규정해 놓은 진리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진리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줬다. 소경을 보게 하고, 물 위를 걷고, 풍랑을 말씀으로 잠재웠다. 그것 말고는 진리를 인간에게 알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이것을 믿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학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가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결코 과학으로 입증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데 그것을 우리의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입증이 안 되니까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관을 바꿔야 한다. 성경이 규정한 세계관으로 보지 않으면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예수님 만이 유일한 진리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매야할 진리의 허리띠이다.
2. 의의 호심경
호심경은 가슴과 배를 보호하는 장구이다. 히브리 사람은 마음이 배(내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제일 많이 공격하는 부분은 가슴과 배이다. 그러니까 배를 보호하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탄은 내 감정, 의지, 욕구, 양심을 공격한다. 때로는 나를 절망케 하고, 교만하게 한다.
이 절망과 교만의 뿌리는 같다. 그것은 하나님 보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좌절은 하나님 보다 내 능력이 크면 나오는 감정이다. 반대로 교만은 하나님 보다 내 능력이 클 때 나오는 감정이다. 이 좌절과 교만을 물리 칠 수 있는 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의의 호심경’을 두르라는 얘기는, 내가 드러나는 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나를 감싸라는 얘기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나를 보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 아무런 의가 내 속에 없을 때에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나 밖에 없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확증하셨다(롬5:8)
이것이 이해가 안 되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바로 헬레니즘 사고를 가진 세계관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슨 신앙이고 신자가 누리는 하나님 나라이다.
3. 복음의 신
원어에는 15절 속에 ‘신(헬.휘포데마)’라는 단어가 없다. 직역하면 ‘평안의 복음의 준비된 것을 가지고, 발을 잡아매라’이다. 즉, 바울은 우리가 어떤 신을 신을 것인가에 대한 것 보다 발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이 나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발을 찌르고, 돌아가게 할 때에 복음으로 발을 동여매라는 것이다.
세상 것으로 수단 삼지 말고, 복음으로 서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신발에 집중한다. 내가 지금 서 있지 못하는 이유를 신발을 핑계 삼는다. 이로 인하여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주저앉게 하고 피하여 도망가게 한다. 그 때 넘어지면 안 된다. 복음으로 일어나야 한다.
오늘 언급한 진리, 의, 복음. 이 3가지 무기는 실제적으로 하나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으로 무장하면 실제 이 싸움은 그 분이 하신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실패는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사탄의 방해가 아닌 자신의 게으름이요, 나태함이 만들어내는 핑계이다. 우리가 싸워야할 싸움을 하지 않고 발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어 던진 복음의 신을 다시 신어야 한다.
그리고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이 싸움에 져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제시된 이 영적 싸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영광의 땅을 밟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것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성경의 내용 중에 가장 믿을 수 없는 내용은 무엇인가. 왜 믿지를 못하겠는가.
3. 성경의 모든 내용이 입증이 된다면 정말 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4. 내 감정이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에 내가 나를 다스리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무엇인가
5. 펜데믹 이 후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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