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신갑주 6가지는 16절을 기준으로 앞의 세 가지와 뒤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앞의 것은 모두 예수님을 의미하기에 신자의 기본이다. 반면에 뒤의 것은 장착을 하지 않으면 신앙의 전투에 실패한다. 그렇기에 뒤의 세 가지는 신앙의 기본 무장 위에 추가된 병기들이다. 추가된 그 세 가지는 무엇인가.
1. 믿음의 방패
이 방패는 무차별 쏟아지는 불화살을 방어하기 위함이다. 이 불화살은 무엇인가. 그것은 악한 생각, 잡념, 불순종,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우리에게 비처럼 쏟아지는 사탄의 공격이다. 방패는 이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 불화살을 맞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내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악한 상황들은 불화살을 맞아서인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의 소양의 부족으로 생각한다. 이로 인해 이 모든 문제를 나에게 집중해서 나를 포기하는 상황으로 만든다.
그럼, 이것을 막아내는 믿음의 방패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내가 노력하여 믿음의 수준을 올려서 이 악한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노력과 수양으로는 절대 이 불화살을 이길 수 없다. 이 방패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믿음으로 악한 상황을 이기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큰 믿음을 소유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이 누군지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면 내게 닥친 악한 상황에 굳이 큰 믿음이 필요 없다. 아무리 믿음이 작을지라도 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고 나의 인생을 마지막 끝까지 주관하고 이끄시는 분이라는 것을 바로 인지한다면 그 어떤 불화살도 이길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믿음의 방패이다.
2. 구원의 투구
구원에는 세 가지 시제가 있다. 그것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이다. 이 중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구원은 현재형이다. 그러니까 신자가 오늘을 살아가며 해야 할 싸움을 의미한다. 이 싸움을 위한 투구를 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투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소망의 투구’를 말한다.(살전5:8) 신자에게 일어나는 낙담의 순간에 이 소망의 투구를 써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 나를 기준하고, 나를 조건 삼아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 찾아온 낙담을 이길 수가 없다. 소망이 없다. 어제 울며 회개해도 오늘 다시 똑같은 죄를 짓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구원이 오늘도 여전히 나에게 변함없는 사랑으로 찾아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라면 낙담을 이길 수 있다.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이유가 깨어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살전5:10) 그렇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우리를 위하여 오늘도 일을 하신다. 심지어 내가 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을 지라도 상관치 않으신다. 기꺼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단 하나의 이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내 열심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졸지 않기 위하여 노력한 여러 가지 흔적과 증거들을 펼쳐 보이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려 한다. 이것이 내가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의 소망은 내게 있지 않다. 나의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변함없이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있다. 하나님은 나의 어떠한 형편과 조건 속에서도 내 인생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는 자리까지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신자의 자랑이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무기이다.
3. 성령의 검
일반적으로 성령의 힘,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어떤 신비로운 능력으로 생각한다. 그 예로 귀신을 기도로 쫓아낸다거나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니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 역시 하나의 성령의 역사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사역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 중의 하나이지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영적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17절) 하나님을 대변하는 말씀이 가장 강력한 신자의 근본적인 능력이다. 요한은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한다.(요1:1) 그러니까 우리의 능력과 힘은 하나님이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방법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귀신을 쫓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적인 것에 집중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마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친 것이다.(마4장) 예수님은 어떤 신비로운 능력이나 기술로 마귀를 물리치지 않았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만이 악한 영을 물리치는 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 역시 방법 삼는다. 마치 말씀을 주문처럼 외운다던가, 내가 성경을 몇 번을 읽었는가로 무기 삼는다. 심지어 성경 말씀을 액자에 넣어 집 안에 두면 그것이 무기가 되어 악한 영이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조차 부적 삼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전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글자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지하여 그가 능력으로 행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가 장착해야 할 성령의 검 즉 말씀의 검이다. 말씀을 주문과 부적이 아닌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 집중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의 능력이 오늘의 나를 살릴 것이고 그것이 성령의 검이 될 때에 말씀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친 세상을 승리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게 가장 취약한 영적인 약점은 무엇인가. 내가 자주 맞는 불화살은 무엇인가.
3. 내게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의 문제가 악한 영으로부터 쏟아지는 불화살로 인함인 것을 알면 무엇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가.
4. 세상 속에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 속에서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
5. 내가 성경대로 믿지 않고, 나름의 신앙의 기준으로 살았던 것이 혹시 있었다면 나누어 보라.
6.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 샤머니즘 적인 신앙의 형태가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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