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입을 것을 원하신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의 인격이 배제된 병기로 장착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무장을 하라고 하신 이유는 사탄의 세력을 무찌르는 것에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소통 속에서 영적인 성숙을 이루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인 전쟁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인지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종용한 후에 바로 즉시 기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에베소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왜냐하면 에베소서에서 가르친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함과 영적인 전쟁이 내 지식을 채우고 방법적인 기술로만 익히고 있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과의 소통과 인격적인 교제로서 완성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완벽히 프로그래밍 된 로봇 군인과 같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에베소서의 마지막을 기도에 대한 가르침으로 끝을 맺는다.
18절에 등장하는 ‘모든’이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는 ‘파스’이다. 바울은 이 단어를 18절에서만 네 번을 사용한다. 그것은 ‘모든, 항상, 여럿’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모든 방법과 상황과 인내를 동원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다. 왜 이토록 ‘모든’을 강조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형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하나의 방법이나 비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탄이 우리가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방해 공작이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제대로 하기로 결심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필요성과 간절함을 불어 넣어준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기도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기에 성의 있게,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결심하게 한다. 경건한 장소와 충분한 시간 그리고 준비된 마음으로 기도해야하기에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기도를 미루게 한다.
이 방법은 상당히 효과를 보고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 갖고 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다. 왜 하지 않는가. 기도하기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찾기 때문이다.
기도는 준비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정성과 성의를 다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느 때이든지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것이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어색함으로 망설이지 말라. 기도는 그저 주를 찾는 것이고, 주를 붙잡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소통 없이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진 채로 장착한 모든 무장은 하나의 장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이다.(18절) 본문은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를 두 가지로 얘기한다. 하나는 ‘성도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을 위한 기도’이다. 그러니까 이 기도의 대표적인 속성은 ‘남을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어떤 사람이 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확실히 주관하고 이끄신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또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에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마6:33) 이 약속이 오늘도 나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믿고 하는 기도. 그것이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이다.
일상의 기도가 주로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이러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갈급함’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많을수록 좋은데 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내가 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인가에 대한 분별 보다 나의 절실함과 열심이 훨씬 앞서게 될 때에 문제가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역 당시 그 누구보다도 열심과 열정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 열정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로마의 정권을 무찌르면 한 자리를 하고 싶은 자신의 욕심이었다. 하나님의 방향과 맞지 않은 열심이기에 결국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마16:23)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 거하지 않는 자의 열심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란 주께 맡기는 기도이다. 내 인생을 맡기고, 내 유익을 드리고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내 모든 기도의 초점이 주를 향하는 기도. 그것이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이다.
또한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바울은 당시 감옥에 있었다. 그렇다면 출옥 혹은 건강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함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했다.
무슨 말인가. 내가 놓인 처지와 형편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핑계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이 말의 의미는 바울은 자신이 현재 감옥에 있는 것이 운이 나쁘거나 로마 황제가 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그곳에 두셨다는 것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옥중 생활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두기고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22절)
이것이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도라는 확실한 정체성과 내가 가야만 하는 삶의 방향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 거하는 자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이다.
통신이 막힌 군인은 아무리 최신 장비로 무장을 해도 그 장비는 전혀 쓸모없는 장식에 불과하다. 이를 깨달아서 오늘도 내가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로 주님과 소통하여 우리가 당면한 영적인 전쟁에 승전고를 울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기도할 때에 갖는 습관이 있는가. 이것이 나의 영적 생활에 유익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말해보라.
3. 남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자연스럽게 내 문제가 해결된 사례가 있는가. 나누어 보라.
4. 내 열심과 열정이 내 신앙에 도움이 될 때와 방해가 되는 경우를 나누어 보라
5. 내가 현재 놓인 상황 속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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