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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09.05.2021. 사도행전 강해(57)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행28:1~11절

바울과 그의 일행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서 지중해 한 가운데서 14일간 표류를 했다. 그 때 바울이 일어나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모두가 살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고, 그의 예언대로 배 안에 있던 276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한 섬에 구조되었다. 그 섬은 멜리데 섬이다.

이 때 쓰인 ‘구조’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쏘조”이다.(27:44, 28:1) 이 단어는 “쏘조”라는 말에 전치사가 붙은 것인데, 이 쏘조라는 단어의 뜻은 ‘구원’이다.(막5:34) 거기서 파생된 ‘디아쏘조’는 ‘기적을 동반하여 구원하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물리적 구원을 넘어 영적인 구원을 같이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는 이 광풍을 통해서 이들이 영적으로 구원을 얻는 과정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살펴보면, 이 과정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과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27장에 보면, 14일 째 되는 날 자정 즈음에 사공들이 물을 재보니 육지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 사공들이 도망가려 닻을 내리는 체하며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는다. 그 모습을 본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어야 너희가 구원을 얻는다’고 소리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버린다.

또한 날이 새서 육지가 가까워 올 때에 군인들이 죄수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 이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백부장이 군인들이 바울마저 죽일까봐 죄수들을 죽이지 말라고 명한다. 이로 인해 배 안의 사람들이 한 사람도 죽지 않고 276명 전원이 구원을 얻는다.

이 모습이 우리의 구원을 아주 잘 보여준 사례이다. 헬라어 구원을 의미하는 ‘쏘조’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이미’와 ‘아직’이다. ‘이미’라는 뜻에서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백성을 택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듦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구원 얻은 자들은 단 한 사람도 누락되는 자가 없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아직’이라는 뜻에서의 구원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미 앞서 정해진 구원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을 뜻한다. 선택 받은 주의 백성들은 모두 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될 것이다. 이런 전제로 본문을 보자. 바울과 그 일행은 큰 풍랑으로 인해 배가 침몰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한 섬에 도달해 구조가 된다. 즉,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배안에 있던 전원이 무사히 로마에 도착해야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한 ‘전원이 구원을 얻는다’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이 배안의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과정으로 보라. 그 배 안의 276명의 사람들은 상징적인 의미로, 이미 구원의 배 안에 들어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단 한 사람도 구원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그 배가 싫다고 도망 가려했던 선원들도, 또한 다 죽어 마땅한 죄수들도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두다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바울이 도망가는 선원들을 붙잡고 군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는데 이 때 쓰인 구원이라는 단어가 바로 영적인 구원에 사용된 ‘쏘조’이다.(27:31) 하나님께서 작정하여 배 안에 두신 자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사람도 잃어버리시지 않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신자의 풍성한 삶으로 가려면 제일 첫 발은 반드시 이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구원의 배 안에 들어온 자이기에 주께서 우리를 작정한 곳으로 이끄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족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목표한 그곳으로 끌고 가실 것이라는 것을 믿을 때에 오늘의 하루를 누리며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인도하시는가. 그것은 이 배의 항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배는 지중해에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한 섬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섬은 바로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 섬의 크기는 지중해의 0.01465%이다. 배의 출항지인 그레데 섬에서 500 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섬이다. 이 작은 섬으로 광풍에 밀려 도착할 확률은 거의 0%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작위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믿는 것이 더 무리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들을 멜리데 섬으로 이끌고 온 것인가.


● 멜리데 섬에 온 이유

그것은 그 섬의 원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바울과 배 안의 사람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에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이들을 따뜻하게 영접했다. 이 때 바울이 나무를 한 묶음 가져다가 불에 넣었는데 독사가 올라와서 그 손을 물었다. 원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그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토속 신앙으로 봤을 때에 이것은 살인자를 벌하시는 복수의 신의 공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이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갖고 있던 토속 신앙이 무너진다. 특별히 바울이 추장의 부친이 걸린 열병과 이질을 안수 기도로 고치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론가 몰아가시고, 그곳에 정착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한 소명을 주신 것이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우리의 인생을 그 일에 사용하시기 위함이다. 성경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마6:33)

바울과 그의 일행(누가, 아리스다고)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복음을 들은 자들이 바울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의 필요를 가득 채워주었다.(10절) 유라굴로를 만난 배 안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짐도, 도구도 그리고 양식도 잃었다.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복음을 행하는 그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바울과 함께 있던 뱃사람들과 그 섬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고, 이를 통해서 로마로 가려는 그들의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채워졌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들이 이 땅을 살아갈 이유요, 목표요, 삶의 방향이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허락하신 능력이요. 보장된 약속인 것을 기억하자. 그 때 우리는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일을 행하신다는 신앙의 보람과 만족이 가득 넘치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인생의 가장 핵심인 것을 하나만 뽑아보자. 그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을 뽑았는가

3. 하나님을 만나면 꼭 물어 보고 싶은 내 인생의 미스테리는 무엇인가.4.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용기가 필요한가.

5.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내 필요 보다 먼저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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