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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09.12.2021. 사도행전 강해(58)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행28:11~31절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바울의 이야기는 약 3분의 2정도가 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바울을 공격하는 유대인의 거짓말로 인하여 수많은 날들을 바울이 핍박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 이야기이다. 바울은 마지막 순간(28장)까지도 자신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변호하고, 자신을 향한 오래를 푸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 바울의 로마 입성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때에 자신의 사명이 로마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고 비전 선포를 한다.(19:21) 이 비전은 후에 예루살렘 공회 앞에서 연설을 한 후에 성령으로부터 확인까지 받았다.(23:11) 그렇게 꿈에 그리던 로마에 왔다. 그 때 로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뜻밖에 기대하던 크고 놀라운 사역이 펼쳐지지 않았다. 그가 수년 동안 해 왔던 일하고 전혀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바울의 모습은 가택 연금 되어 셋방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돌연 끝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의 위대함은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극적이고 반전이 있으며 사역의 사이즈로 말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위대한 신자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사상과 상반된 개념을 말하라고 하면 휴머니즘이다. 이런 휴머니즘이 중심된 사상의 책들을 보면 항상 그 마지막은 인간 승리이다. 여러 가지 역경을 통과하고 인내한 사람이 일반인이 이루지 못하는 큰 일을 해 내었다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예외가 없다.

많은 이들이 이런 책들이 기준이 되어 자신의 세계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렇기에 성경을 볼 때도 이 휴머니즘의 안경을 끼고 본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니 마치 세상의 위대한 업적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이 실패한 인생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바울을 보라. 바울의 그 마지막 모습도 세상의 성공과 승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물론, 바울이 죽은 후 250년이 지난 후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AD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AD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칙령을 반포하여 사실상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다.

분명한 것은 이 역사적 위대함의 시작은 이방인 선교를 처음 시작한 바울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는 아니다. 그 때는 그냥 셋방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한 노인이었다. 심지어 빌립보서를 보면 이런 바울을 비난하여 무시하던 기독교인들도 있었다.(빌1:17)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나타난 그 평범한 바울의 모습을 저자는 과장하거나, 포장하거나 무언가 극적인 요소를 첨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향하는 신자의 위대함은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오늘 하루를 말씀에 순종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오늘 할 일을 해 내는 것이 가장 큰 위대한 신앙을 가진 자요.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가장 필요한 일꾼이다.

그 일을 하지 않고 우리는 자꾸 무언가 남기려고 하고, 하나님에게 내 업적을 인식시키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이다.

● 가택 연금 당한 바울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 가택 연금을 당했다. 하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의 연금 생활을 다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로마의 재판 과정이나 결과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왜냐하면 누가의 관점은 바울이 오명을 벗는 것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약속한 로마에 그가 왔고, 예언대로 복음이 로마에 선포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의 반응도 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함으로써 복음을 전했을 때의 결과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24) 씨를 심고 물을 주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임을 기억하자. 그 때에 우리는 복음 전도를 어렵지 않게 행할 수 있다.

● 바울의 마지막 사역 모습

바울은 지난 날 동안 복음 전파를 위하여 어디든 방방곡곡 불신자들을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마지막 그의 사역의 모습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23) 이를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의 교훈을 발견한다. 먼저는, 복음 전파 사역은 처음에는 불신자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 주시기를 인내하며 현재의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은 내가 온 힘을 다하여 찾아간 사역을 한 후의 일이다. 절대 이 순서를 바꿔서 사역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사도행전 그 후의 이야기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행1:8) 이에 따라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다. 이어서 바울은 소아시아와 일부 유럽과 로마에 복음을 전했다.

로마가 땅 끝인가. 아니다. 로마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온 세상과 연결된 곳이다. 이제 복음이 가야할 곳은 로마를 기점으로 땅 끝에 가야 한다. 바울은 로마까지 갔다. 그렇다면 땅 끝에 가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들이다. 사도행전을 대하는 모든 신자들이다. 사도행전은 제자의 뒤를 잇는 우리는, 바울이 만들어 놓은 로마를 교두보 삼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인 28장이 무언가 결론을 내리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터뜨리고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은 28장이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를 통하여 써 내려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외면하지 말고 십자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하는 일에 모두가 힘쓰는 자가 주님의 제자요. 신자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사도행전을 통하여 가장 크게 깨달은 점 혹은 마음에 생긴 결심이 있다면 무엇인가.

3. 휴머니즘의 세계관과 기독교의 세계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4. 내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대상이 있다면 누구인가. 지금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가

5. 내가 바울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감옥에서 참수를 당한 바울에 대한 시각이 어떠했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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