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첫 출발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를 믿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을 믿을 수 있으면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믿을 수 있다. 그렇기에 창조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이다.
● 창세기의 시작
창세기는 바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포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어떤 논리의 전개도, 설득도, 이해를 시키기 위한 노력도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언어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에는 진화론이 있고, 창조론이 있다. 혹자는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이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둘 다 과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반복적인 실험을 통한 재현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이론은 실험을 하여 재현할 수 없기에 둘 다 이론이지 과학이 아니다.
창조 이론은 확률적인 접근으로 추론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비행기 엔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비행기 엔진은 200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졌다. 비행기 엔진을 보면 분명,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일 사람에게도 설계도가 있다면, 설계자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설계도가 있다. 그것은 DNA다. 이 안에 유전정보가 들어있다. 또한 단백질은 20여개의 아미노산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사람 안에 있는 단 한 개의 세포핵 안에 백만 페이지 내용의 정보가 들어있다. 백과사전 1,000권 분량이다. 그 내용 중에 한 글자만 달라도 기형이 나오거나, 문제가 생긴다. 그 많은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우연하게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설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추론일 것이다.
빅뱅이론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탄생 때에 큰 폭발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큰 폭발로 인하여 이렇게 섬세한 우주가 탄생했다고 믿는 것은, 200만개의 부품을 집어 던졌더니 저절로 비행기 엔진이 생겼다고 믿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군가 설계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심지어 그 폭발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더 가능하다.
설계도를 보면, 설계자의 지혜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 설게자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고, 그 설계자가 하나님이시라면 그 분으 지혜와 능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잘 드러낸 것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 담겨 있는 의미다.
● 창조시의 상황
창조 때의 모습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있다’(2절)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의 의미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허에 내용을 채우며, 어둠에 광명을 제공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다’는 말은 마치 닭이 자신의 알을 감싸 안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삶이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어둠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내용을 채우며, 희망으로 이끌고 가신다는 약속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에서 창조에 해당하는 단어는 ‘바라’이다. 이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절망할 때가 있다. 그 때는 내 손에 건강도, 물질도, 도와줄 사람도, 오늘을 살 힘조차 없을 때이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없을 때 우리는 무너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우리에게 찾아 오사 우리를 당신의 사랑과 긍휼로 채우시고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 빛의 의미
천지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다 개입하신 일이다. 그것은 1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복수(엘로힘)인 것으로 알 수 있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되었으며(2절) 성자 하나님은 3절의 ‘이르시되’라는 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르시되’라는 히브리어 ‘아마르’는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이 단어를 근거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말씀은 무엇인가.
이 말씀이 곧 로고스(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요1:1~5) 이 로고스(말씀)은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다. 그렇기에 창세기 1장 3절의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비출 때에 혼동, 공허, 어둠이 물러가고 우리 안에 질서와 생명이 자리 잡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에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그 어떤 것으로도 스스로의 구원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해 내셨다. 그 방법은 우리에게 있는 무언가를 근거로 하지 않았다.
우리 인간 스스로는 절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방법.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방법으로 하셨다. 이를 통해서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한 우리로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내셨다. 그게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창세 전에 이미 계획하시고, 그것을 보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다.(4절) 이 ‘좋았더라’라는 히브리말은 ‘토브’이다. 이 단어는 다른 의미로, ‘선하다. 아름답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능력도,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이 땅의 빛으로 보내시고,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물러가게 하셨다. 그리고는 이 일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이고, 그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바라’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창조신앙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창조 이야기에서 내가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가. 그게 무엇이고 무엇이 원인인가.
3.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는 말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4. 하나님이 나를 보시며 ‘좋았더라’라고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이유는?
5.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가. 내 말로 표현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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