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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09.22.2024 야곱의 이야기(6). 믿음에 대한 이해. 창31:1~13절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을 인간의 언어로 담은 책이다. 그래서 인간의 국한된 사고로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생각을 담아 낼 수가 없다. 그런 의미로 성경에 나온 단어 중에 가장 어려운 단어는 ‘믿음’이다. 과연 믿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본문의 인물들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본다.

     

● 야곱의 아들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다. 이들의 가정환경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버지 야곱의 부인이었던 두 자매(레아&라헬)의 시기심으로 인한 잦은 다툼 때문이었다. 또한 아들 중의 다수는 그다지 성품도 좋지 못했다. 서모를 범한 자, 분노를 못 참는 자, 매춘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아들들이 다 잘된다.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창시자가 모두 야곱의 후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인이 이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야곱이 이방 땅 하란을 떠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주하는 것은 모세의 출애굽과 아주 비슷하다. 모세가 예수의 그림자이듯이 야곱 역시 예수의 모형이다. 즉, 야곱의 가족들이 그를 따라서 하란 땅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간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이 열 두 아들의 구원은 그들의 행위가 아닌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한다. 

     

● 야곱의 아내들; 레아와 라헬

이 두 사람은 야곱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를 따라 나왔다. 그것은 그들 역시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럼, 이들에게 구원 받을 만한 신앙이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당시에 그들의 아버지 라반은 드라빔이라는 우상을 섬기던 자였다.(창31:30) 또한 그의 딸 라헬이 하란을 도망 나올 때에 드라빔을 훔쳐서 나온 것을 보면 이들 모두 드라빔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탄생 당시에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어린 아이들을 다 죽였다. 온 이스라엘이 통곡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때의 상황을 ‘라헬이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마2:18)이라 했다. 라헬을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어머니로 그리고 있다. 마태는 이 아픔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회복될 것이라 약속한다. 라헬의 통곡(이스라엘의 아픔)은 그리스도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레아 역시 그녀의 자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 이 두 사람 모두 구원의 반열에 올랐음을 말하고 있다.

     

● 야곱

야곱은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온갖 고생을 한다. 그럼 이런 질문이 생긴다. ‘야곱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면 왜 그의 길이 형통하지 못한가. 왜 이런 고난의 길을 겪게 되는가’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은 ‘믿음’ 때문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의 이해 속에 있는 ‘믿음’은 내 의지, 내 결단, 나의 일관된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단어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믿음은 전혀 다른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노력과 목적으로 인간에게 빚어지고 만들어지는 단어이다.

     

야곱은 구원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전혀 믿음의 사람답지 않게 행동한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서원했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의 머리와 계략으로 인생을 꾸려나가려고 한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그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이러하다.

     

야곱이 14년을 삼촌 라반을 위하여 일을 하고 이제 떠나려고 하자 라반이 그에게 품삯을 줄 터이니 계속 남아 있으라고 권한다. 이에 야곱은 품삯으로 양은 검은색과 얼룩무늬가 있는 것, 염소는 얼룩무늬가 있는 것으로 달라고 한다.

     

라반이 이 제안을 수락한 후에 야곱의 품삯에 해당하는 가축들을 선별하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3일 길) 자기의 아들들에게 보낸다. 앞으로 태어날 가축들을 교배할 때에 야곱의 품삯에 해당하는 가축들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다.

     

이 때 야곱이 말도 안 되는 꾀를 낸다. 하얀 줄무늬가 있는 나무 조각을 만들어서 가축들이 물을 마실 때에 그 앞에 보이게 놓는다. 가축들이 시각적인 영향을 받아 얼룩무늬의 새끼들이 탄생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얼마나 한심한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을 행하고 있다. 자신의 머리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실제로 얼룩무늬의 새끼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여전히 자기의 의지와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이런 야곱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공식과 다르다. 그가 믿음이 좋아서 복을 준 것이 아니다. 거꾸로다. 복을 쏟아 부어서 믿음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의 인생에 고난이 있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하여 고난을 사용하신 것이다.

     

야곱은 이 일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야곱은 난생 처음으로 아내에게 이런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셨고, 하나님이 내게 이런 얼룩무늬의 가축을 주셨노라’고.(창31:7,9) 이 고난을 통하여 야곱은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산다’고 고백한다.(갈2:20의 헬라어 직역) 그렇다. 믿음은 내가 나의 의지로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노력과 의지로 나를 붙잡는 것이다. 그의 신실하심이 영원히 나와 동행하시는 것, 이를 통하여 내가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믿음’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어’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믿음’이라는 단어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

3. 만일 하나님이 내 신앙의 상태에 따라 구원을 주시는 분이라면 나의 구원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4. 부모가 변변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자녀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5.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 머리와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던 경험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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