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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09.29.2024. 야곱의 이야기(7) 야곱의 항복. 창32:22~33:4절

온전한 믿음은 두 가지의 고백을 요구한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고백과 그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야곱은 20년의 고난 끝에 하나님이 내 인생을 구원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직은 그가 내 ‘주인’까지는 아니다. 여전히 자신의 계획과 머리를 의지한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찾아오셔서 그를 항복 시킨 이야기가 바로 얍복강 가의 사건이다.

     

야곱은 삼촌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던 길에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형과의 관계이다. 형 에서가 아직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가기 전에 형이 있는 곳으로 종들을 보내어 알아봤다. 그랬더니 형이 화가 풀어진 것이 아니라, 동생 야곱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400명의 자객을 이끌고 그를 죽이려고 야곱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이 얘기를 듣고 야곱이 공포에 떤다. 그리고 이번에도 꾀를 낸다. 그것은 가축 550마리를 다섯 떼로 나누어 형에게 뇌물로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도 네 그룹으로 나누어 보내고 자기는 맨 뒤에 온자 남았다. 그리고 두려움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 그 때 도저히 못 견디겠던 야곱이 일어나 평생 처음 기도를 한다.(32:11)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구한다. 놀라운 변화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응답한다. 어떻게 하셨는가. 그에게 씨름을 걸어오셨다.

     

● 얍복강의 씨름

많은 경우에 이 씨름을 ‘야곱의 기도’라고 한다. 또한 이 기도를 통하여 그가 온전히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그가 이 씨름 후에 변했다. 하지만 온전히 변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이 씨름이 기도일 수가 없는 것이 이 씨름의 시작은 야곱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야곱의 고집을 꺾으려고 치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야곱이 완강히 버티자 하나님이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셨다. 그것은 그의 허벅지 관절을 꺾어 불구가 되게 하셨다.

     

이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비로소 그가 어쩔 수 없이 ‘나를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다. 야곱의 전 생애는 바로 이 싸움이다. 야곱의 온 세포에 믿음을 뿌리내리려 하는 하나님과 이것을 거부하고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에 그저 나를 도와만 달라’고 버티는 야곱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 야곱이 드디어 항복했다.

     

그는 완벽한 계획이 있었다. 형에게 뇌물을 보내서 형이 감동을 받게 하는 것과 만일 형이 뇌물을 거부하고 계속 죽이려고 한다면, 나머지 가축들을 몰고 도망가는 것이었다.(32:8) 그런데 그가 고관절을 다치는 바람에 이제 도망가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야곱이 기대하고 바랐던 상황이 아니다. 왜 하나님은 그의 살려달라는 기도에 이렇게 응답을 하신 것인가. 그것은 야곱과 형의 만남을 보면 해석이 된다.

     

● 야곱과 에서의 만남

야곱이 이 사건 이후에 또 조금 변했다. 그것은 본래 가족들 뒤에 혼자 있었는데, 정작 형과 만날 때에는 자신이 맨 앞에 선다.(33:3) ‘죽이면 죽으리라’는 모습이다. 그가 드디어 형을 만났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것은 야곱을 죽이려고 400명의 자객을 몰고 오던 형 에서가 야곱을 보고 목을 어긋맞추고, 입 맞추고 부둥켜안고 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왜 한 순간에 에서가 변했는가. 그것은 얍복강에서 씨름을 한 후의 야곱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에서는 야곱이 보낸 550마리의 가축을 보고 그가 부자가 되었음을 짐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받아야 할 축복을 그가 받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를 더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400명의 자객과 함께 야곱을 반드시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마주친 야곱은 어떠한가. 엄청난 고생으로 폭삭 늙었다. 거기다가 밤새 씨름을 해서 옷은 흙투성이에다가 너덜 너덜 찢겨져 상거지와 다름없었다. 이것도 못 봐줄 지경인데 ‘내 주여~’하고 걸어오는데, 다리마저 절고 있다. 야곱이 불구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모습을 본 형 에서가 가슴이 무너진다. 그리고 반드시 죽이려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다. 만일 야곱이 자신의 계획대로 뇌물을 이용했다면, 그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에서와의 만남 직전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 것. 그것이 바로 얍복강의 씨름이다. 이 씨름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 이름을 묻다

이 질문은 ‘너의 실체, 진짜 모습이 무어냐?’고 물은 것이다. 이 질문에 ‘네. 저는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야곱의 뜻은 ‘발뒷꿈치를 잡은자’ 혹은 ‘사기꾼, 강도, 약탈자’라는 뜻이다. 이는 곧, 야곱이 ‘나는 사기꾼이고, 강도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회개’이다.

     

회개는 ‘가던 길을 돌이키는 것’이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신의 계획과 방법으로 살던 것에서 돌이키는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야곱이 앞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께 나를 맡기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반응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선택된 백성을 자기 맘대로 살게 두지 않은신다. 찾아오셔서 그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이제는 자신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시고 결국에는 항복을 받아 내신다. 그것이 야곱을 통하여 우리가 보는 신자가 걸어야 할 길이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붙잡는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붙들고 늘어지는 그의 기질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변한 것이 있다. 붙들고 늘어지는 기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붙드는 대상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자신의 머리와 재산을 붙잡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는 인생의 방향이다. 이전의 나를 위한 삶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여기고 내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그것이 신자가 이루어야 할 변화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온전한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3. 절망과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룬 적이 있는가. 그 때의 심정은 어떠했는가.

4. 나의 완벽한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가. 왜 안 됐다고 생각하는가.

5.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너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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