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매는 좋은 성품이 아니라 ‘영혼구원’이다. 이것은 재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는 개운치 않은 부분이 등장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하신 이후에는 계속해서 ‘계명을 지키라, 사랑하라, 순종하라’는 성품에 관계된 명령을 하셨다. 이는 곧, 예수님은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품적인 변화도 요구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 영혼구원과 성품의 변화
예수님께서 영혼구원을 말씀하실 때와 성품의 변화를 요구하실 때에는 차이가 있다. 영혼구원을 말씀하실 때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것은 ‘나의 안에 거하라’이다.(4,5,6,7절) 반면에 성품적인 변화에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라고 하셔서 ‘사랑 안에’를 추가하셨다.(9,10절)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성품의 변화를 요구하실 때에는 본인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본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자신이 앞으로 너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게 될 것을 암시하시며 너희도 이와 같이 서로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즉, ‘나의 사랑 안에’를 추가하셔서 본인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의 따라야 할 좋은 예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에는 예수님은 신자가 ‘그와 함께 거하는 것’을 두 가지로 얘기했다. 하나는 신분의 변화를 의미하는 영혼구원이다. 다른 하나는 수준의 변화를 의미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구원의 두 영역인 신분의 변화와 수준의 변화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아주 단순하다. 그의 안에 거하면 된다. 그에게 접붙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구원 받은 이후는 다르다. 가야할 방향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자의 삶을 살라고 하시며 그에 대한 본으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9절)
베드로 사도는 이를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과정이라 말한다.(벧후1:4)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우리의 성품의 측면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하는 그런 사람으로 꾸준히 몰아 가셔서 결국에는 주와 같은 성품을 가진 자로 하나님이 빚어갈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것은 완성이 아닌 방향이다. 완성이라면 온전한 성품이 되지 않으면 실패다. 하지만 방향은 내가 온전함을 향하여 가고 있으면 성공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부르심이고 우리 신자가 걸어야 할 길이다.
● 그의 사랑으로 살아야 할 이유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사랑을 배우고 그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라고 하신다.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기쁨이 있게 하기 위함이다.(11절) 그런데 문제가 있다.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기쁘지 않은 자들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이다. 내가 문제이던지, 예수님의 약속이 거짓이던지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만일 예수님이 기쁨을 주시겠다는 이 약속도 못 지키시는 분이라면 죽어서 가는 천국의 기쁨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기쁨을 배가 시키고 그 기쁨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는 것으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11절)
내가 요구하고 바라는 기쁨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기대했던 그 기쁨에 대한 근본이 바뀌는 것이다. 예수님이 약속한 평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평안을 주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평안을 내게 주는 것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의 것과 다르다고 하셨다.(요14:27)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시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의 상황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처형이 없어지는 것으로 평안을 누리지 않으셨다. 그 모진 상황 속에서도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평안을 갖고 계셨다. 예수님이 그 평안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럼, 이 기쁨과 평안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한 “내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9절)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나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여 나에게 주어진다는 믿음이 나를 기쁨과 평안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로 부름을 받는다.(14절)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에 합한 자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그 분의 수준의 평안을 내가 가지기도 하고, 그 분의 기쁨을 나에게 나누는 자로 초대받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 것들과 친구가 되거나 경쟁하는 자로 있지 않다.
우리는 세상 것의 성공을 보장 받기 위하여 예수는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모든 근거, 원리, 방법을 이제 예수님의 수준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자리에 부름을 받고 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보장하는 분이시고, 지키시는 분이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이 내 신앙의 근거가 될 때에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기쁨과 감사와 찬송과 평강이 우리의 자랑이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예수를 믿은 후 나의 성품에 나타난 뚜렷한 변화는 무엇인가.
3. 변화가 생겼거나 혹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 성품의 변화 혹은 신앙의 성장은 완성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5. 내가 이해하는 예수님의 평안과 기쁨은 무엇인가. 그것을 나는 소유했는가. 긍정과 부정의 경우를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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