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인(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최초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던 것일까. 빌립의 행적을 통하여 신자의 인생 속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살펴본다.
1. 신자의 일생
신자와 불신자의 인생을 비교했을 때에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내 인생의 주권(sovereignty), 즉 그 다스림이 누구에게 있는 가를 인지하는 것이다. 불신자는 자기의 노력과 주어진 재능으로 인생의 목표한 것을 이루어간다. 반면에 신자는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와 간섭으로 그의 인생이 만들어져 간다고 믿는다.
사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는 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에게도 하나님의 통치는 동일하게 있다. 그러나 신자는 그것을 인식하는 자들이고 불신자는 자기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인식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는 내 인생에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인생길에서 아무리 하찮아 보이거나,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 올지라도 그 일로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필요한 과정이기에 그 일을 두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빌립 집사’이다. 그는 복음을 전하고, 성공을 이루는 모든 과정 속에서 그가 애초에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본인은 말씀 전하는 일보다 봉사가 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서 집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순교할 자신이 없어서 사마리아로 도망갔는데 그로 말미암아 그 성이 복음화 된다.
현재 사마리아가 복음으로 굳건히 서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가. 빌립이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를 광야로 보낸다. 이것처럼 비능률적이고, 비효과적인 것은 없다. 이번에는 광야에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전도한다. 그럼, 이제 한 나라를 변화시키는데 쓰임 받을 것 같은데 내시와도 헤어진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빌립을 ‘아소도’와 ‘가이사랴’로 보낸다. 그는 결코 그가 가진 경험과 재능을 한 곳에서 사용할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빌립을 그도 알지 못하고, 그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계속 끌고 다닌다. 왜 그러시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뜻이다. 하나님이 신자의 삶을 주권적으로 끌고 가실 때에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초월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장애라고 느끼거나 혹은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그의 일하심이 전혀 구애를 받지 않으신다.
빌립은 그가 가진 재능과 경험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 그가 앞서 가진 어떤 경험도 그 뒤에 벌어지는 일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빌립으로 말미암아 확장되어 가고 있다. 성경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우리의 인생의 승리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근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룬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생 개입이 없었다면 결코 그 자리에 올 수 없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는 것이다.
2. 신자의 순종
사도행전에 기록된 빌립의 이야기에서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가 사마리아 성을 복음화 시키고,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정말 잘 한 일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만 세 번을 반복해서 강조한다.(26, 29, 39절) 빌립은 그가 가진 것으로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을 정말 잘했다.
성령이 지시하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토를 달지 않고 사마리아, 광야, 아소도, 가이사랴 등 명하면 바로 시행을 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해 본다. 그가 광야로 떠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에서 행한 일이 벌써 예루살렘까지 소문이 낫기 때문에 그를 잡으려는 유대인들이 곧 들이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광야로 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왜냐하면 내시는 유대인이 상종을 하지 않던 이방인일 뿐만 아니라 저주 받은 노아의 아들, 함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을 한다.
그는 정말 단순하다. 논리와 이성으로 따지지 않는다. 자신이 놓인 형편도 보지 않는다. 그저 성령의 음성에 단순히 순종하는 삶. 그것이 빌립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이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신다.
3. 신자의 신앙
빌립의 인생행로를 들여다보면 예수를 믿은 후 그닥 그에게 유익한 일이 없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집사 동기 스데반은 죽고, 본인은 계속해서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
왜 그랬을까...그것은 빌립이 내시에게 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내시에게 구약 성경의 내용을 예수와 연결 시켜 복음을 풀어주고 있다.
빌립은 그가 어려서부터 믿고, 듣고, 알아 왔던 모든 성경의 내용이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었다. 이 말은 곧, 그가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야(구원자)가 예수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신자에게 이 사실은 너무나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수 없이 성경을 읽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을 못 시키고 있었다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이 아닐 확률이 아주 크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땅의 복을 받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또한 리더십이나 인간관계를 배우기 위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다. 그 외 다른 것들은 모두 다 부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복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하늘의 신령한 복’이다. 이 신령한 복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엡1:3) 빌립이 그 험한 상황 속에도 어떻게 단순하게 성령이 시키는 일을 하고, 예수 믿은 후에 잘 되는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열심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단 하나의 사실.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음으로 아는 자가 빌립처럼 또한 바울처럼 “찬송하리로다”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게 되는 좋은 기회는 언제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3. 어릴 때 내게 없던 재능, 기술 혹은 능력이 생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떻게 생겼는가.
4. 내가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왜 그것은 순종이 어려운가
5. 예수를 믿은 후 내가 받은 가장 큰 복은 무엇인가.
6. 성경을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가장 큰 진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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