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28절은 ‘하나님의 문화명령’으로 불리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명령하심으로 실제적으로 이 땅의 모든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이끌고 가라는 것으로 해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문의 말씀으로 인간 창조의 과학적 정황과 이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우리가 어떻게 준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을 살펴본다.
● 인간 창조의 과학적 정황
하나님께서는 짐승과 인간들을 모두 흙에서 창조하셨다.(19절) 지금의 상황으로 생각해 보라. 어린 아이들은 흙에서 두꺼비 집을 만들 수 있고, 어른들은 흙에서 도자기를 만든다. 또한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은 흙에서 반도체를 만든다. 이 세 가지 모두 흙을 기본 재료로 한다.
똑같은 재료인데 전혀 차원이 다른 품질의 제품이 나오는 것은 전적으로 만드는 사람의 지혜와 능력의 차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흙에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땅의 흙’의 히브리 원문은 ‘그 땅에서부터 얻어진 티끌 혹은 먼지’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신체 구성 물질을 땅에서 취하신 것이라는 뜻이다. 진저 알렌(Ginger Allen)이라는 사람이 지구의 흙 성분과 인체의 성분을 자세히 비교했다. 놀라운 것은 이 둘의 구성 성분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원소의 양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구성은 동일하다.
하지만 원소가 동일하다는 것이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바뀌는 화학진화를 증명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원소 13가지를 합한다고 해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원소에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개입이다. 이것 외에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요즘 세상은 세포 하나에서 똑같은 유전자 구성을 가진 생물체를 복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그와 똑같은 인간인 하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렇게 과학적인 사실을 비추어 봤을 때에 인간 창조가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을 과학이 말하고 있는 셈이 된다.
● 문화 명령의 준수 방법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짐승들을 동일하게 흙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문화 명령은 인간에게만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창조 시에 인간은 두 가지 부분에서 짐승과 다르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창조됐다.(26절) 먼저 이 단어들은 ‘유사단어’다. 즉, 서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강조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형상과 모양’은 무슨 뜻인가. 이는 사람에게는 있고, 짐승에게는 없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인지할 수 있는 영성,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행하는 감정과 의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한 죄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는 양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인간만이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이 땅의 문화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2)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할 때에 특별히 하나님의 ‘생기’를 인간에게 불어 넣어 생령(생명체)이 되게 하셨다. 이 생령은 영적인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이 생령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네패쉬 하야”는 다른 짐승들을 표현한 ‘생물(네페쉬 하야)’에게도 똑같이 쓰였기 때문이다.(1:21, 2:19)
그럼, 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불어넣으신 생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은 ‘생령’을 ‘살려주는 영’과 대조하며 설명했다.(고전15장 45~49) 그것은 단지 생물체(생령)에 불과했던 첫 번째 아담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려주는 영(성령)’을 입어 하늘에 속한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에게 불어 넣어준 생기는 단지 하나님의 ‘호흡’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성령’이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곧, 창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기를 부어 주시는 그 모습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미리 보여 주시는 예표, 싸인임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에게 호흡을 불어 넣어 주시는 그 단순한 장면에서, 4,000년 후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영광된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게 되어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49절)
우리는 창조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이미 입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졌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지속적인 교제를 행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형상이 일그러져 있기에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으로, 그 분의 영광으로 채우고, 정복하고, 다스릴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이 부서진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안에 성령을 넣어 주시고,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완벽히 회복하신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우리에게 시작하셨고, 그것에 대한 완성은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이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하여 주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후3:18)
● 나눔 질문
1. 이 세상을 하나님의 문화 명령에 맞게 바꾸어 나가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2.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간증들이 있으면 나누어 보라.
3. 인간이 다른 짐승과의 차이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소통하는 부분 말고 짐승과 인간의 차이를 볼 수 있다면 나누어 보라.
4.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설교를 듣기 전과에 차이가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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