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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10.18.2020. 사도행전 강해(21).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0~21절

하나님은 바울을 향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다. 바울의 행위를 보고 택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내 백성 삼았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에게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가.


1. 계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은 그 충격으로 3일간 식음을 전폐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에 있는 제자 아나니아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는 그에게 바울에게 찾아가 안수하여 그로 하여금 다시 보게 하라는 지시를 했다.


이것이 바로 계시다. 계시란 어떤 예언적 성격으로 하는 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계시의 정의는 ‘베일을 벗기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숨겨있는 자신에 관한 내용들을 알려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계시는 자연을 통하여, 특별계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말한다. 특별히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구원’을 목적으로 주신 것이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에 가장 완벽한 특별계시는 ‘성경’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에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원’이다. 그렇기에 이 계시의 중심은 단연코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해서 오실 예수를 계시하고, 신약을 통해서 오신 예수를 계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에게 나타나는 환상, 음성 이러한 계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나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계시를 하신다고 말씀하셨다.(히1:1,2). 여기서 쓰인 ‘마지막’은 ‘무엇 무엇의 끝’이라는 의미이다. 즉, 그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 계시가 완성이 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본문의 아나니아에게 나타난 계시다. 이 계시는 ‘바울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예정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계시의 특징은 아주 구체적이고, 주체와 객체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여 혼동이 없다. 만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정확하지 않으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하다.


2. 신자의 존재 본질

주님은 바울을 가리키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칭하였다. 아들, 일꾼, 보배 등 여러 호칭이 있는데 왜 그릇이라고 얘기했을까. 그것은 바울의 부르심의 이유와 연관이 있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가 가는 곳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 자체 보다 ‘바울’에게 집중한다. 그러나 그들이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이 보물이고 곧 보배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는 무엇인가. 그 보배를 담은 ‘그릇’이다.

어떤 그릇인가. 질그릇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보배로 부르지 않고, 그릇으로 불렀다. 바울은 평생에 이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종으로 여겼으며, 흙과 같은 우리의 마음에 보물이 깃들었음을 말하며 우리를 보배를 가진 ‘질그릇’이라고 칭하였다.(고후4:5~7)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에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신분이 변한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불러 주시고 그분의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나는 예수가 너무 좋아서 나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라고 말할 때에 나의 ‘희생’이 강조되면 안 된다. 이것이 자칫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내가 ‘금그릇’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치는 내 안에 담겨진 보배, 그리스도 때문에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다.


아나니아를 보라. 그 역시 주님의 지시에 바로 순종하지 않았다. 바울은 위험한 인물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지시를 피하려고 하였다.(13절) 이것이 죄인에게서 나오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못 합니다’가 일반적이나, 역설적으로 이 때가 주님이 드러나기 가장 좋은 때이다. 내가 질그릇임을 알 때에 내 안의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3. 강건함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을 뜨게 된 바울은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다. 이 때 쓰인 ‘먹다’와 ‘강건해지다’는 특이한 단어이다. ‘먹다’라는 말은 ‘얻다. 받다. ~취하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능동태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주는 자가 있어야 되는 수동의 의미가 가미되어 있다. ‘먹다’라는 의미로는 여기에 딱 한번 쓰였다.


‘강건해지다’라는 단어도 직역하면 ‘힘 안에 거하다’이다. 이 단어도 여기 말고 딱 한군데 쓰였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천사들이 ‘힘을 더했다’라고 할 때이다.(눅22:43) 이런 전반적인 것을 비추어 봤을 때에 바울이 기력을 회복한 것은 물리적인 음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언가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힘에 의해서 강건해졌다는 뜻이다.


그럼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앞구절에 해답이 있다.

바울은 ‘침례’를 받은 후에 강건해졌다. 이 말은 어떤 의식을 통해서 강건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드디어 바울이 예수를 그리스도(구원자)로 믿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실하게 믿은 것이다.


이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몰아 붙이셔서 그에게 항복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선택 받는 신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다. 결국에는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손에 붙들림 받았으며 이로 인해 이 땅을 자신 있게 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감추어진 비밀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신다.(골1:25~27) 우리는 항상 우리가 질그릇인 것에 집중하여 힘들어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변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보배를 담은 그릇으로 빚어 가신다. 그것이 선택 받은 자가 누리를 은혜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계시를 받은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가. 오늘 들은 말씀에 비추어 봤을 때에 어떠한가.

3.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4. 예수를 믿고 내가 변한 부분과 변하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 보라. 또는 내가 아는 지인도 좋다.

5. 내가 아나니아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순종? 아니면 도망? (목숨이 걸린 문제임)

6. 내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 때에 나만의 회복 방법이 있다면 나누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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