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셨다. 왜 굳이 벧엘일까. 하나님은 분명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벧엘은 세겜 보다 좋은 환경이 아니다. 농사도, 목축지도 세겜이 더 좋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은 풍요로운 물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약속의 관점으로 본 복은 무엇인가.
● 약속의 관점
하나님이 야곱에게 한 약속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과 동일한 약속이다. 그것은 자손의 번영, 땅이 소유, 복의 인생이다. 이 세 가지 중에 후대에 이르러 명확히 확인된 약속은 자손의 번영이다. 아브라함 한 명에게 한 약속인데, 지금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땅과 복의 인생에 대한 약속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애굽강에서 유브라데스 강까지 주겠다’고 하셨다.(창15:18) 하지만 그 약속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의 인생에 대한 약속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다 부와 명예와 건강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 땅,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후손, 영적인 땅과 영적인 복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을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은 ‘자손들’이 아니라 ‘자손’, 즉 한 사람이었다. 즉, 그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 땅을 예수 그리스도(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약속임을 말한다.(창12:7)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물리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분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물리적인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들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땅) 안에 있는 것이다.
복도 마찬가지이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영적인 복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잘 아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부와 명예 등 세상적인 복의 소유가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다 가져도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한 복이 이러한 물리적인 복을 말했을 리가 없다. 이를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본다.
● 세상의 복 vs. 성경의 복
이 약속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인생을 보라. 모두 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그다지 복된 인생이라 볼 수 없는 자들이었다. 모두 다 가나안 땅의 이방인으로 살았고, 죽을 당시에 외로웠다. 특별히 땅을 처음으로 약속 받았던 아브라함은, 죽을 때 그가 소유했던 것은 자신의 무덤이었던 막벨라 굴과 근처의 조금의 밭이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말하는 복은 이런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벧엘로 돌아가신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벧엘이 환경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야곱과의 약속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창28장)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야곱은 이곳에서 서원을 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땅’은 물리적인 장소인 ‘벧엘’이 아니었다. 영적인 의미의 약속의 땅이다. 그런데 야곱은 이것을 물리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헤브론)’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하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이 이런 야곱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야곱이 약속의 장소 벧엘에 와서 제단을 쌓게 하고, 그 후에 야곱을 그의 아버지의 집, 헤브론으로 인도하셨다.(35:27)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야곱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죄악 된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죄악에 대하여 말이 없으시다. 그저 그가 가야할 방향만을 계속 말씀하셨다. ‘벧엘로 돌아가라.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35:1)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그에게 고난과 역경을 두셨다. 이것은 징벌이 아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이러한 세상적인 복이 아님을 야곱에게 알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실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알게 해 주시고, 진정한 복이 무언가를 알게 될 것이다.
● 라헬의 죽음
라헬은 질투하는 사람이요, 언니와 레아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고, 심지어 우상 드라빔을 숨겨 가지고 있을 만큼 신앙적으로 연약한 사람이다. 전혀 본이 될 만한 그릇이 못된다. 그런데 후에 라헬은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다. 이것은 복음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그가 어떻게 민족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결혼을 잘해서이다. 남편 야곱을 잘 만나서이다. 라헬이 라헬 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남편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잘 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구원이 사람의 자질과 능력과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그 분이 언약으로 인함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라헬이 받는 모든 복은, 라헬이 야곱에게 속했기 때문에 주어진 복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집요한 사랑으로 우리의 마지막 그 끝까지 책임지고 인도하실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잘나서 내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그와 연합된 자로 있기에, 그에게 속한 자이기에, 그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그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못을 묻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야곱에게 한 약속이고, 그의 아내 라헬이 더불어 받게 되는 복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3.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복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세상적인 복과 성경의 복을 나누어 보라
4. 하나님이 나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벧엘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할 의향이 있는가
5. ‘결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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