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결코 하나님께 사랑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하는 인생을 살았으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야심찬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항복을 받아내셨다. 변화를 결심한 야곱은 벧엘에서 모든 우상을 땅에 묻고, 제단을 쌓았다.
야곱은 참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다. 그렇다면 이 과정을 통하여 그가 어떻게 변했는가. 그가 죽기 전의 몇 가지 모습을 통하여 그의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달라졌음을 볼 수 있다. 그의 변화를 살펴본다.
● 바로와의 만남
야곱의 말년에 온 땅에 기근이 들었다. 야곱의 아들 중 하나인 요셉의 배려로 야곱과 그의 형제들이 이집트로 이사를 왔다. 요셉은 자신의 가족을 이집트 황제인 바로에게 소개를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을 한 것이다.(47:7) 축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하는 행위이다.(히7:7) 그런데 당대의 최고 권력자인 바로를 일개 양식을 구하러 온 노인이 축복을 한 것이다.
이것이 야곱이 달라진 점이다. 사실 야곱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형 에서를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는 형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형에게 머리를 일곱 번 땅에 숙이며 다가갔다. 그런데 대 이집트 제국의 황제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그가 130년의 험악한 생을 살았던 것에 기인한다. 그 역경을 지나고 보니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49:25) 그래서 바로 앞에서도 구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하나님의 복으로 바로를 축복하는 사람으로 빚어졌다.
● 에브라임을 향한 축복
요셉이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는 전통대로 큰 아들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 손 앞에, 그리고 작은 아들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손 앞에 두었다. 그런데 야곱이 양 손을 어긋나게 얹어서 장자의 축복을 동생 에브라임에게 주었다.
야곱은 그 이유를 ‘아우가 형 보다 큰 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이것은 야곱이 육신의 눈은 쇠하여졌지만, 영적인 눈은 밝아졌음을 의미한다. 야곱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영적인 복이 물질의 복을 이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에는 물질이 복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사기를 쳐서라도 장자의 복을 받으려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장자의 복은 영적인 복이었다. 형 에서가 야곱 자신 보다 물질의 복을 더 많이 받았으나 자신이 영적으로는 훨씬 더 큰 복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형 므낫세와 동생 에브라임도 마찬가지이다. 후에 가나안 땅에서 12지파를 분배 받을 때에 므낫세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 보다 분배 받은 땅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에브라임 지파가 훨씬 강하다. 에브라임 지파에서 여호수아, 사무엘, 드보라, 입다가 나왔으며 후에 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로 성장한다.
야곱이 지금 그것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영적인 복을 형 므낫세가 아니라 동생 에브라임이 받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것으로 야곱이 영적으로 성숙해졌음을 알 수 있다.
● 요셉을 향한 축복
야곱은 죽기 전에 열 두 아들 모두를 위한 예언적 축복 기도를 한다. 이 모든 기도가 다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가 영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 중 특별히 요셉에게 한 기도의 표현을 보면 그의 인생관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그가 모든 복은 ‘네 아버지’의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말한 부분이다.(49:25) 여기서의 ‘네 아버지’는 야곱 자신이다. 그렇다면 ‘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는 굳이 ‘네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것이 야곱의 변화이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온 우주의 중심이 ‘나’였다. ‘내’가 축복을 받아야 하고, ‘내’가 노력해서 결과를 얻으려했고 위기의 순간에도 오로지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창34:30) 그런데 말년의 모습에는 ‘나’가 아니라 ‘너’가 중심이다. 대단한 변화이다.
또 다른 표현을 보면,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 보다 낫다”고 한다.(창49:25)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내 선조'가 누구인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이삭이다. 이들이 받은 축복은 말로 할 수 없이 크다. 이에 비해 현재의 야곱은 아주 초라하다. 그는 현재 이집트에 양식을 구하러 온 노인이며 그의 아들 요셉을 의지하며 사는 처지이다. 축복은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하는 것이다(히7: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조의 축복 보다 자신의 축복이 낫다'고 한다.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에 근거한다.(창47:9) 자신이 험한 세월을 보내보니 하나님이 '전능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창49:25) 그는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나만큼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내가 하는 축복이 가장 값지고 복된 것이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닌 '누가 더 하나님을 많이 아는가'의 싸움이다. 야곱은 전 인생을 통하여 이를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야곱의 변화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 이 자리, 이 야곱의 말년의 모습으로까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어디까지인가. 그것은 그가 걸어온 그 험악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이 항복시킨 바로 그 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리까지 여러분을 이끄실 것이요. 그리고 항복을 받아내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느끼는 야곱의 전 인생을 한 문장으로 나의 언어로 요약해 보라.
3. 세상적으로 나 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4.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는 자리에 있다면 어떤 부분을 강조하여 축복을 하고 싶은가.
5.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나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있는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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