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3대 사건은 오순절 사건, 다메섹 사건, 고넬료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 오늘의 고넬료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세 가지 부분을 살펴 본다.
1. 베드로의 편견
베드로는 앞서 사마리아인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정통 유대인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가 당시 천민으로 취급했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을 하는 모습으로 그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가진 편견, 패러다임을 깨려하는 그의 몸부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이방인 백부장이 자기 집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에게 환상과 음성으로 백부장으로부터 온 사람을 맞이하라고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퉁명스럽게 대한다. 왜냐하면 복음은 여전히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편견을 깨지 못한 것이다. 사마이아인도, 무두장이도 유대인의 피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해를 했다. 그러나 이방인마저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편견의 무서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음의 복을 힘껏 누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좁은 패러다임을 깨고 하나님의 패러다임을 장착하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발자국만 벗어나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역의 목표와 목적
오늘 본문을 보면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쉬이 동의가 안 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너무나 복잡하게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셨다. 그렇다면 마치 사울을 부르셨을 때처럼 본인이 직접 고넬료를 믿게 하시면 된다. 그런데 굳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달가워하지 않는 그를 설득해서 고넬료 가정을 방문케하고 그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하신다.
왜 하나님은 일을 이렇게 전개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은 백부장 가정을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다. 베드로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다. 베드로를 훈련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백부장의 사건 속에서 이 부분을 놓치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성공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변하는 것이 목적이고, 목표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기계나 소모품처럼 다루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을 보라. 아브라함에게는 시청각으로, 모세에게는 달램으로, 베드로에게도 다정함으로 다가오셔서 그들을 설득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이 부분을 놓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놓치고 일의 성과만 남게 된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믿음과 이 믿음으로 이어지는 신앙생활을 건물로 묘사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만질 때에 어떤 한 번의 사건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지 않으신다.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으로 지어 가신다. 그렇기에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손에 주어진 것이 아니기에 날마다 이 믿음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그 상황 속으로 몰아가신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고, 화려해지며, 안전함이 보장된다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성숙의 길은 내가 더 많이 예수를 닮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나의 시간을 포기하고 하나님에게 얼마나 많이 항복해야하는 가의 싸움 속에서 우리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고, 가야만 하며, 그 길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절대로 이방인은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베드로를 끈질기게 설득하시고 인도하셨듯이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동일한 일을 행하고 계신다.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있으면 어려움과 난관이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3. 우연 혹은 섭리?
하나님의 디테일한 인도로 드디어 고넬료 가정이 베드로의 설교로 예수를 믿어 침례를 받는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일이 있기까지의 모든 과정 중에 한 가지라도 어긋났다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데반이 죽고, 사도들이 흩어지고,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 베드로가 사마리아에 가서 믿는 자를 확인하고, 베드로가 룻다에 가서 애니아를 고치고, 욥바의 다비다를 살리고, 결국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인 가이사랴로 가게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고넬료 사건을 완성하기 위하여 베드로를 슬금 슬금 몰아가는 것이 보이는가. 만일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로 갈 일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가이사랴 고넬료 집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과 욥바는 100km가 넘게 떨어진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베드로가 기도했던 시간이 낮 12시였는데 본래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시간은 낮 3시이다. 베드로가 왠일인지 3시간을 일찍 기도했다. 그런데 그 때 환상을 보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시간에 맞추어 고넬료의 사람들이 도착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고넬료의 가정이 구원 받는 일도 없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한참을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인가. 결코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아래 이루어진 섭리이다. 우리는 그저 내게 주어진 현재의 일에 충성하면 나의 앞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다. 다윗도 본래 골리앗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으로 물맷돌 던지는 훈련을 한 것이 아니었다. 주어진 목동일을 하는 가운데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양떼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팔매 연습을 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셨을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셨다. 그것을 믿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요청과 요구에 응답하는 삶을 살자. 그 때에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의 인생이 멋지게 빚어지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편견으로 인해 오해를 하거나 일을 그르친 적이 있는가. 지금도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은 무엇인가.
3. 교회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배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4. 내 삶에 우연인 것으로 여겼으나 알고 보니 섭리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5. 내 인생의 큰 일을 나이 대 (10대 이전~현재)별로 구분해 보라.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6. 싫지만 순종했더니 내 인생에 도움이 되었던 일이 있었는가.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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