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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12.1.2024 요셉의 이야기(4). 요셉을 통하여 보는 그리스도Ⅲ. 창41:37~57절

요셉의 신분의 변화를 통하여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 3가지를 살펴본다.

     

● 총리

바로가 요셉의 해몽을 좋게 여겨서 그를 온 이집트를 다스리는 제 2인자인 총리로 임명한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인장 반지를 끼워주고 세마포를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두르고 버금수레를 태운다.


바로가 요셉에게 반지를 주었다는 것은 요셉이 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이집트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이름의 뜻은 ‘생명의 부여자’이다. 요셉이 이집트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이집트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외적으로 완전히 이집트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성육신’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본래 하늘에 속한 분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 그가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십자가에서 신이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의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내용이다.

     

그 성육신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 요셉이 완전한 이집트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갖는 모습이다. 그는 그 이름의 뜻대로 이집트 총리가 되어 ‘생명의 부여자’로서 온 땅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어 모든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금 행하고 계신 일이고, 요셉을 통하여 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 결혼

요셉은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 아스낫과 결혼한다. 이 두 사람에게서 두 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장남 므낫세는 ‘하나님이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뜻이고 둘째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요셉은 결혼을 통하여 낳은 두 아들로 말미암아 그 동안의 모든 수고와 고난과 아픔을 다 잊을 만큼 보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아스놋과의 결혼이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는 열매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교회, 즉 성도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혼인 예식을 치른 부부 관계로 묘사한다. 요한은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둔 혼인 잔치에 청함 받은 신부로 묘사를 하고(계19:9), 바울은 본인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을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를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고후11:2)

     

요셉은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과 수고를 하나님으로부터 보상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때가 그가 총리가 되어 화려한 퍼포먼스를 할 때가 아니었다. 그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모든 것을 보상 받았다고 느낄 때는 그에게 주어진 신부를 통해서이다. 그녀와의 결혼으로 얻게 된 열매들로 인함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 땅에서 모든 고난을 몸소 감내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도 견디셨다. 그리고 부활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가 정작 기뻐한 것은 그가 하늘의 영광을 되찾았을 때가 아니었다. 그의 기쁨은 오직 우리로 인함이었다. 그가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기쁨이었다.(요15:11) 이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것이다.(요15:13)

     

이 요셉의 결혼에서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이방 여인하고 결혼한 사실이다. 그런데 에서는 이방 여인하고 결혼해서 버림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결혼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시비가 없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하나님이 일관성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성경의 위인 중에는 이방 여인하고 결혼한 사람이 아주 많다. 모세가 행한 두 번의 결혼은 모두 이방 여인이었다.(미디안 & 구스 여인)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을 얻었고, 살몬은 여리고 기생 라합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전혀 질책이 없다.

     

왜 그런가. 우리가 착각하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다. 지극히 편파적이며 또한 편애적이다. 에서가 버림을 받은 것은 그가 이방여인을 택한 것이 이유가 아니다. 그가 유기된 이유를 그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의 결혼이 지목된 것이지 그것이 이유가 아니다. 결정적 이유는 그의 어머니 리브가 태중에서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이 이유이다.(롬9:11,12)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요셉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방 여인 아스낫과 결혼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바로,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법대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방 여인 아스낫은 바로 정확히 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나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요셉이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한다. 그래야 부족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중보자

요셉은 ‘생명의 부여자’라는 이집트 이름을 얻었다. 그 이름대로 그는 흉년 때에 주린 모든 백성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집트에서 생명의 부여자는 그가 아니다. 황제 바로이다. 그런데 왜 요셉이 ‘생명의 부여자’로 불리는가. 그것은 바로가 그가 가진 모든 권세를 요셉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55절) 즉, 요셉은 황제 바로와 백성들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하고 계신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세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했다. 그렇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을 홀로 어깨에 지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딤전2:5,롬8:34) 이제 그 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자. 그 때 생명의 부여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이유를 말해보라

3. 성경은 곳곳에서 불신자와의 결혼을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고후6:14,15)

4.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거나 그렇지 않거나 어떤 부분에서 그러하다고 생각하는가.

5. 때로는 영적 지도자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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