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막 지대인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을 시키셨는가. 또한 그 험한 광야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두 가지로 살펴 본다.
1. 출애굽의 의미
우리는 출애굽의 이야기를 이집트를 ‘죄악된 세상’으로, 가나안 땅을 ‘천국’으로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죄의 노예되었던 우리를 어두움에서 건져낸 사건으로 얘기한다. 맞다. 출애굽은 그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출애굽의 시작이다. 출애굽은 단순히 이러한 단편적인 이야기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는 사건이다. 앞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를 위한 첫걸음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출3: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건지신 것은 ‘해방’이 목적이 아니다. 이들로 하여금 믿는자 곧, ‘신자’가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영적인 싸움이다.
이 싸움은 신자의 싸움이 아니다. 그 증거로 출애굽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10가지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홀로 하나님이 하셨다. 즉, 하나님의 노력과 열심으로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졌다.
구약은 신약의 예언서이다. 구약의 예언의 성취가 바로 신약이다. 다음의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출애굽기 19장 5, 6절과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거의 같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그것은 출애굽기는 ‘너희가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소유와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조건이 포함된 미래형이다. 반면에 베드로전서는 이미 ‘백성과 제사장이 되었다’는 완료형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이 신약에서 이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항상 원망하고 불평을 했다. 그런데 왜 신약에서는 그 조건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15절에 나와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이 제물을 바쳐서 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만족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제물이 대속의 값을 치렀다. 그 대속의 제물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모든 언약을 다 지키신 것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이것이 출애굽의 의미에서 왜 중요한가. 우리의 신앙생활은 구원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집트를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이 하신 싸움이고 이미 이루신 싸움이다. 출애굽의 목적은 그것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목적이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자신이 죄와 싸워서 내가 이겨 내야할 전투로 생각한다. 이것에 대한 승리가 목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죄와의 싸움을 넘어서 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을 내가 승자로써 누리느냐 빼앗기느냐의 싸움이다. 이것을 아는 자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넉넉함을 누릴 수 있다.
2. 광야의 의미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복음을 누리기 위하여 성큼 성큼 세상을 향하여 첫발을 내 딛는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뜻밖에 광야가 펼쳐진다. 젖과 꿀은 고사하고 물도 없는 사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만일 하나님께서 지중해 연안의 해안길인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셨다면 열 하룻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남쪽으로 돌려 시내산을 통과하여 40년을 돌아가게 한다.
왜 이런 길로 가게 하셨을까.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따라 갈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광야로 이들을 돌린 이유는 ‘해안길’로 가면 블레셋 사람들, 가나안 사람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기에 ‘애굽으로 돌아갈까봐’라고 한다.(17절) 오랜 세월 동안 노예 생활을 했던 그들이 탈출하자마자 전쟁을 치르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쟁을 치른 시기는 출애굽하고 몇 달이 되지 않았을 때이다. 사실 그 때도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은 이들의 실력이 아니었다. 모세가 산에서 손을 들고 내리지 않아서 승리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안길’ 전쟁에서도 그렇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남쪽으로 돌리셨는가.
그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 이유를 하나님이 맨 처음 모세에게 명령했을 때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예배이다. 이들로 하여금 예배자로 만들기 위해서이다(출3:12). 이 때 하나님께서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말한 그 산이 바로 ‘시내산’이다.
그들은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고 하나님을 성막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낸 이유이고 이들을 지름길인 ‘해안길’이 아닌 광야의 길로 접어들게 하신 이유이다.
이들은 광야의 길을 통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만나로 먹이시고 메추라기로 배불리시며 물을 내어 목을 축이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또한 이 광야의 길 가운데서 의복과 신발을 상하지 않게 하시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난다. 이것은 이전에 노예로 있을 때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이다.
이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택한 백성에 걸맞는 자녀로 변화 되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이다. 신자는 인생의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 그 능력은 세상의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체험하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겪은 사람이 알 수 있는 신자가 가진 힘이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지난 1년 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복음으로 해석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그 때에 신자에게 주어지는 참된 능력의 삶이 다가올 한 해를 채우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스스로가 가장 많이 싸우는 영적인 전쟁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떻게 이겨나갔는가
3. 2020년에 일어난 하나님의 보호가 어떤 것이 있었는가.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4. 현재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 ‘지름길’은 무엇인가. 본인이 광야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곳에 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5. 새해에 이루고 싶은 한 가지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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