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요셉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본문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들이 요셉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셉은 이집트 총리이기에 그를 찾아온 그의 형들에게 충분한 양식을 줄 수 있다. 그 양식은 하늘 창고에 있는 영적인 복을 의미한다. 신자가 이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행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도록 인도하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 해야 할 일
요셉은 그의 형들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 그 순간 이미 그들을 용서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에 대한 증거는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가장 두드러진 것은 요셉은 형들을 만난 후, 여러 차례 그들 모르게 혼자서 운다.(42:24,43:29)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양식 자루에 지불한 돈을 도로 넣고 길에서 먹을 양식마저 챙겨서 보낸다(25절) 이런 그에게서 형들을 향한 분노와 복수심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동생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43:7), 결정적으로는 형들이 자신 앞에 꿇어 엎드릴 때에 자신의 꾼 꿈을 기억하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45:8) 이런 일련의 일들을 살펴보면 그는 분명히 이미 용서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쉽게 양식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정탐꾼으로 몰아서 감옥에 가둔다. 왜 그는 이런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는가.
이것은 이런 이유다. 이 형들이 이런 극한의 상황에 다다르자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비로소 그들이 옛날 일이 생각이 난 것이다. 그것은 바로 20여년 전에 자신들이 그들의 아우 요셉을 결박하여 이집트에 팔아버렸던 바로 그 죄악이다.(21절)
그 때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요셉을 팔았던 그 죄로 말미암아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 죄의 핏값이다’라고 고백한다.(22절) 드디어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죄를 인정하며 회개를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요셉의 의도이다.
실제 요셉은 시청각 자료를 동원해서 그들의 오래된 죄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그의 형들 중 한 명인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한 것이다.(24절) 요셉은 그들에게 시므온의 결박당한 모습을 보임으로 과거에 그들이 벌였던 어떤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자신이 이전에 형들에게 팔려가면서 겪은 그 두려움과 그 참혹한 고통이다. 그것을 형들에게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요셉이 이를 통하여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 요셉의 일이 바로 하나님이 신자에게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한 백성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신자에게 이 일을 행하시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대로 우리에게 그 복을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 준비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의 과정을 겪게 하신다. 그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보는 자리로 인도하신다. 이것을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 요셉이 형제들에게 행하는 역경이다.
그들은 이 고난을 통하여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이 고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극한의 상황까지 우리를 몰아가서라도 이 고백을 받아내실 것이다. 그것은 죄를 깨닫는 ‘반성’을 넘어서, 가던 길을 돌이켜 주의 뜻을 향하여 가는 ‘회개’의 자리까지이다. 그렇다면 과연 요셉의 형들은 어떠한가. 그들이 참으로 회개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죄를 깨달은 이 후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형들의 변화
요셉은 9명의 형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 이것은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요셉처럼 잃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이다. 그 때 르우벤이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아버지를 설득한다. 반드시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장담한다.(37절) 자신의 두 아들을 걸고 맹세한다.
유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대신 담보가 되어 그곳에 있을지라도 베냐민을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한다.(43:9) 실제로 정작 베냐민을 본 요셉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안 보내 주려고 하자 본인이 대신 종이 되어 남을 터이니 베냐민을 보내 달라고 요셉에게 호소한다.(44:33)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은 요셉을 팔아 버릴 때의 형들과 달라졌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요셉의 생명을 가볍게 여겼지만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의 동생 베냐민을 지켜낸다. 두 번 다시 그 실수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 값을 아는 하는 회개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고 이들의 이런 행동은 바로 그들이 회개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한 신자는 착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자란, 내가 예수를 믿은 후에 바른 생활을 살고,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사는 자가 아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진심으로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가 신자다. 이 회개의 순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복을 누리고 있다면, 그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의 복을 누리는 자들과 다른 것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는 자들이다. 이 복은 회개를 통하여 주어짐을 기억하고, 이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아멘으로 걸어가는 자들이 신자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만일 요셉의 입장이라면 자신에게 찾아온 형제들을 어떻게 대했을 것 같은가.
3. 요셉은 참 많이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4.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달은 적이 있었는가. 그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5. 내가 무언가를 뉘우친 후에 이 전과 달라졌던 경험이 있는가. 무엇인지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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