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에는 신앙의 두 위인, 야곱과 요셉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이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 야곱의 죽음
야곱은 죽은 후에 시신의 부패를 막는 미이라 처리를 한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유언대로 그의 시신을 이집트에 묻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이전하여 묻는다. 이 과정에 유독 강조되는 단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올라간다(히.알라)’라는 말이다.(50:5) 이 단어는 나중에 출애굽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한다(히.알라)’라는 단어와 동일하다.(출3:8)
지금 야곱이 시신이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이 모습은 이 때로부터 약430년 후에 벌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이전하고 있는 그 그림자인 것이다. 이로 인하여 야곱의 장례 행렬은 출애굽 할 때의 이스라엘과 상당히 흡사하다.(창50:8,출13:18) 무슨 말인가.
지금 이 야곱의 죽음은 그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님 나라의 입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향해 가는 걸음은 이집트 쪽에서 바라보면 죽음이지만, 반대편인 가나안 땅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너가기 직전에 유월절을 겪었다. 그 때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한 자들은 죽지 않고 살았다. 마찬가지로 지금 야곱은 죽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한 것이다.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지금 야곱의 장례 행렬이다. 또한 야곱의 시신을 방부 처리했다. 이로 인하여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이 구원이다.
● 요셉의 죽음
야곱의 죽음과 요셉의 죽음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시신을 미이라 처리했다는 것과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이 둘 사이의 죽음에는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야곱의 죽음에는 눈물, 애통과 애곡이 있다.(10절) 그런데 요셉은 그것이 없다. 슬퍼하지도 않을뿐더러 그의 죽음은 단 한 줄로 끝난다. 죽음 이 후의 얘기가 없다.(26절)
왜 그런가? 이것은 두 사람이 창세기에서 보여준 상징성 때문이다. 야곱은 인간을 대표한다. 그렇기에 애통이 있다. 그러나 요셉은 다르다. 그는 예수님을 상징했다. 그렇기에 실제는 분명히 있었을 그의 장례 행렬과 묘지를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왜냐하면, 요셉의 죽음은 인간을 대신하는 죽음이요. 우리의 구원을 보여주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이루는 현장, 그것이 바로 그의 죽음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다. 우리에게 기쁨이요, 감격이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죽음은 간단히 끝났다. 그러나 그의 장례는 계속 이어진다.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이전한다.(출13:18) 그리고 여호수아가 요셉을 가나안 땅에 묻는다. 그가 묻힌 곳이 어디인가? 세겜 땅이다.(수24:32) 과거에 세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와 세겜에 도착을 했을 때에, 그는 그곳 족장의 아들들에게서 땅을 샀다.(창33:19) 그 땅을 요셉에게 유산으로 줬다.(수24:32) 그 유산으로 준 땅에 요셉이 묻힌 것이다.
그 후 약 1,400년의 시간이 지나서 신약 시대가 찾아왔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수가성으로 가신다. 그 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그녀를 구원하셨다. 그 장소는 ‘야곱의 우물’이었다. 이 야곱의 우물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 근처이다.(요4:5,6) 즉, 요셉이 묻힌 세겜과 같은 지역이다.
이 야곱의 우물은 이스라엘 족장들의 약속의 땅을 상징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가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그 구원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수천 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요셉은 죽었다. 그리고 책이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일을 하셨다. 그리고 끝내 요셉을 상징했던 예수님이 직접 그 땅에 오셔서 그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럼,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가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요셉과 요셉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요셉과 그의 형제들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그의 형제들이 몹시 불안해한다. 자신들이 요셉에게 지은 죄 때문이다. 그 죄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요셉이 문제 삼지 않았다. 그 이유가 아버지 야곱이 우산이 되어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죽었다.
이로 인해 불안에 떨던 형제들은 동생 요셉을 직접 찾아가서 꿇어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그 때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을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다”(20절) 이 말은 복음의 절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었을지라도 그것을 선으로 바꾸신다.
여기서 한국말 ‘선’으로 번역된 히브리 말이 ‘토브’이다. 토브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최고의 선을 의미한다. 이것이 십자가이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악한 행동을 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여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선으로 바꾸신다. 그 십자가에 하나님의 토브가 임한다. 그래서 그의 십자가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토브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가장 선한 계획, 토브의 성취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어떤 조건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는 자가 그분의 사랑을 누릴 수 있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가까운 가족 혹은 지인의 죽음을 맞이한 적이 있는가. 그 때의 감정을 솔직히 나누어 보라.
3. 내가 가족에게 남길 유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딱 하나를 남긴다면 무엇이겠는가.
4. 예수님이 복음을 전한 곳이 약속의 땅 세겜이었다는 것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5. 십자가는 무엇인가. 내 언어로 설명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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