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복음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참 신앙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만이 답이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성경 66권을 한권으로 줄이면 어떤 내용일까. 그 한권이 요한복음이다. 성경의 엑기스이다. 그럼 요한복음 전체 21장을 한 구절로 줄이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이 구절은 성경 전체의 핵심으로 이 구절을 잘 정리해도 바른 신앙으로 살 수 있다.
요한복음이 쓰여진 당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로 약 400년간 선지자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 때에 한명의 참된 선지자가 등장을 한다. 그가 바로 침례 요한이다. 침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마지막 선지자이기에 당시에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헤롯 왕도 함부로 해하지 못할 정도로 백성들이 선지자로 여기고 따랐고, 실제 권력의 중심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그에게 침례를 받았었다.(마3:7) 침례 요한이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해도 아무도 대항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마치 두려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는 이런 권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단 교주와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자기 본문, 위치와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결코 예수 보다 앞서지 않았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모세의 형, 아론의 자손이었다.(눅1:5) 소히 말하는 ‘금수저’이다.
이로 인하여 실제로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네가 누구냐? 그리스도냐?’라고 물었다. 그 때 요한은 자신은 그저 ‘광야의 외치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자신은 그의 신발끈도 못 푸는 사람으로 표현했다.(요1:27) 지금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다’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자기를 보낸 분이 누구인가를 알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을 아는 자가 신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 우리를 보내신 목적: 증언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라는 것을 증언하기 위함이다.(7절)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침례 요한을 택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라는 것을 세상에 전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를 통하여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는가. 당연히 그가 가는 곳에 기적이 일어나고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일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성경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게 된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두 명이다.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인데, 그나마 다른 한명은 누군지도 분명하지도 않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다르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흐름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그 부름 받은 모두가 전도를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사대로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은사대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따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고, 그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행해야 할 가장 큰 사명은 빛되신 예수를 증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하지만 전도는 은사라 생각해서 몇 번 해 보고 결과가 없으면 다른 사역을 찾아나서는 것이 우리가 범하는 실수요. 사명에 대한 오해이다.
예수를 믿게 만드는 일이 내 능력과 실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도 그들을 믿게 만들지 못했다.(10,11절)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것은 어둠에 있으면 절대로 빛을 못 알아본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절대로 본인들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불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 예수를 믿게 하는 방법
정답은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이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예수를 믿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거나, 내가 내 의지로 예수를 믿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것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을 하는가.
12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되는’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기노마이’라는 헬라어이다. 이 동사는 ‘중간태’이다. 이 단어와 동일한 단어가 3절의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되었다’에서 ‘지은 바 되었다’라는 동사가 바로 중간태이다.
그러니까 만물이 지어진 것과 동일한 원리로 내가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물은 내가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를 지으신 이가 본인의 뜻대로 지은 것이 만물이다. 그러니까, 기노마이 중간태는 내 의지가 아니라 무언가에 의하여 저절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한 태이다. 즉, 나는 내가 믿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노마이’. 하나님이 온 정성을 들여서 만지고, 빗고, 쓸고, 닦아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이 얘기를 13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렇다. 이렇게 신자는 만들어진다. 내 노력과 수고와 열정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뜻으로, 계획으로, 하나님의 노력과 열심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한 전도로 인하여 열매가 없음에 낙심할 필요가 없다.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것은 내 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행하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 그리고 예수를 전하는 사명을 전하는 일에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위하여 살 때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 덮히는 복된 신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침례 요한처럼 칭송을 받는 위치에 있다면 나는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대했을 것 같은가.
3. 전도를 해 본 일이 있는가. 그 때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전도를 받아본 경험도 나누어 보라)
4.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그것이 우연인가, 아니면 어떤 이끌림에 의해서였는가. 나누어 보라.
5. 내가 알고 있는 유용한 전도 방법에 대하여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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