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주후 50년 초기에 2차 전도 여행 때에 세운 교회이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의 고린도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 고린도 도시
고린도는 아가야의 행정 수도로, 위 아래로는 남북 육상 교통의 요지이고, 동서로는 해상 교통의 요지이다. 항구가 동서로 있는데 두 항구(겐그레아, 레게온)를 통해서 이탈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이집트 등지로부터 상품 유통이 이루어졌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곳이기에 무역이 활발한 인구 약 60만명의 상업도시였다. 유동 인구가 많고, 돈이 풍부했다. 이로 인해 유흥, 방탕, 음욕이 있는 탐욕의 도시였다.
각종 신전도 많았다. 특별히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명에 달하는 여사제가 있었다. 그녀들은 낮에는 제사를 주관하고 밤에는 매음을 했다. 이처럼 고린도는 성적 난잡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곳에 바울은 혼자 도착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을 머물며 교회를 세웠다. 그 때 본인의 모습을 ‘약하고, 두려워서 심히 떨었다’고 말한다.(고전2:6) 이 때에 만난 평생 동역자가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이다.
이렇게 어렵게 교회를 세우고 떠났다가 3차 전도여행 때에 에베소에 머무를 때에 바울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그가 떠난 후에 고린도 교회가 엄청 문제가 많은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
그들의 문제는 이러하다. 그것은 분쟁, 음행, 유치한 신앙이었다. 교회가 4개의 파(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로 갈라졌고, 근친상간을 하며, 그들이 받은 영적인 은사로 인하여 스스로를 신령한 자로 여기며 다른 이들을 무시했다.
바울의 후임으로 아볼로가 목회자로 왔다. 그런데 아볼로는 언변이 좋다. 성경을 가지고 유대인도 거뜬히 이기는 실력자이다.(행18:24,28) 반면에 바울은 지식도 많고, 글도 무게 있게 잘 쓰나 외모가 볼품없고, 말도 시원치 않았다.(고후10:10) 그래서 교인들이 이것을 공격했다. 그는 자비량으로 목회를 했는데 심지어 그것조차도 비방의 이유가 되었다. 오죽 못났으면 지원도 못 받느냐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 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사도가 되려면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이어야만 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어야 했다.(행1:21.22)
사실 바울은 여기에 해당이 안 된다. 바울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만난 적이 없다. 예수님의 부활체 역시 본적이 없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에는 애매한 것이 있다. 그는 예수님을 환상 중에 만난 적이 있었다. 다메섹 도상에서였다.(행9:4) 그 때는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였기에 그는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다. 이는 사도의 조건 중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은 바울 혼자만의 주장이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이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도, 유다도 스스로를 사도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책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렀다.(약1:1,유1:1) 예수님의 형제일지라도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그 3년에는 그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도의 직분은 남용될 수 없는 직분이었다. 그렇기에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바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편지 첫 서두에 ‘나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로 시작한 것이다.(1절) 그가 고린도에 보낸 모든 편지들 속에서 본인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지속적으로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그를 의심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얻으려고 그를 호시탐탐 제거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뭐라고 부르는가? 그들을 ‘성도’라고 부른다.(2절)
성도가 무엇인가? 영어로 Saint이다. 거룩한 사람, 성인이다. 분명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분쟁하고, 음행하고, 유치한 신앙인에다가 영적 아버지 바울을 공격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성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성도는 어떤 뜻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아니면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말로 해서는 되지 않는 존재, 기어코 본인이 죽는 방법 외에는 깨끗해 질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성도’이다.
그래서 신자는 그 누구도, 아무도 자랑할 수 없는 자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가 된 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는 자’라고 한다.(2절)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그렇게 불러 주는 것이다. 그게 성도이다. 어떻게 그렇게 불림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십자가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은혜’라고 한다.
고린도의 교인들이 신앙심이 뛰어나서 그들이 성도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그들을 자녀 삼으시고, 그의 몸된 교회로 세워 주신 것이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만일 내가 돈이 있고, 시간이 있는데, 주변에 쉽게 놀거리가 많은 곳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3. 내가 고린도 교인이었다면 바울을 어떻게 대했을 것 같은가.
4. 내가 바울이라면 고린도 교인들을 어떻게 불렀을 것 같은가.
5. 내가 생각하는 ‘사도’는 평소에 어떤 조건이라 생각했는가.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