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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2025. 고린도전서 강해(4).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고전1:18~31절

고린도 교회는 네 개의 파로 나뉘어져서 분쟁을 했다. 이 분쟁은 ‘내가 누구에게 침례를 받았는가’라는 것이 시작이지만 결국에는 이로 인해 ‘내가 너 보다 낫다’라는 교만과 이에 대한 자랑에서 비롯된 분열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너희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을 자랑할 수가 없다’라고 말을 한다.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며 제시한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 십자가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셔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음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무능함과 불가능을 말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 준다. 그런데 그들은 이 십자가를 ‘내가 다른 사람 보다 우월함을 보여 주는 도구’로 사용했다. 즉, ‘내가 그토록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헬라적 사고다. 이는 ‘인과율’에 근거한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이에 합당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는 여기에 맞지 않는다. 십자가는 구원의 원인이 내게 없다. 형편없는 죄인인데 구원하셨다. 이것은 헬라적 사고로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 진리를 살짝 비틀었다. 그것은 ‘그 많은 죄인 중에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것이 이들이 소유한 영적인 은사였다. 나는 이러한 은사를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 그것은 헬라적 사고를 지난 세상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미련한 것’이다.(18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넘어서 계신다는 것이 바울의 논지다. 이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다.(23절)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는 자인데 로마의 체제 아래 실패했다. 그들의 사형법인 십자가에서 범죄자로 수치스럽게 죽었다. 그렇기에 유대인의 사고로는 십자가를 말할수록 마음이 불편하다. 거리낌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용납이 안 되어.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자꾸 빼고 구원 받을 만한 근거들을 인간에게서 찾아서 그것을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헬라적 사고와 부합된 모습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 한다.(롬3:10) 하지만 어떤 사람은 스스로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만 흉악범들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범죄자는 어려서부터 범죄 환경에 노출된 사례가 많다. 반면에 정의롭고, 선을 행함에 능동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람도 실제적으로는 DNA인 경우가 많다. 즉 태생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죽을 만큼 참아야 하는 에너지를 써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죽을 만큼 억울한 일을 당해도 덤덤히 넘어간다. 이 태생적 성품이 온유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인격이 훌륭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작은 일에 죽을 만큼 참아내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고 결과로 판단한다. 사실 그 온유함은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태생적 성품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일방적으로 외부에서 내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자가’가 필요하다. 십자가는 내 행위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자랑할 수 없는 증거’로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다.

     

● 전도

전도는 신앙의 열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신앙의 행위이다. 하지만 전도 역시 자랑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전도는 내 재주와 기술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전도를 ‘미련한 방법’이라고 하신다.(21절)

     

전도는 논리와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 전도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한 자를 부르시는 도구이고, 사람은 단지 그것에 쓰임을 받는 것 뿐이다.(행13:48) 전도는 교회에 데리고 오거나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할 전(傳)에 길 도(道). 말 그대로 단순히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은사가 필요 없다. 내가 예수 믿고 좋은 점,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그냥 말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전도가 왜 어려운가.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만드는 결과는 내 손에 있지 않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나는 그저 심고 물주는 일을 하는 것이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고전3:6) 흔히 말하는 전도를 잘하여 교회에 데리고 오는 사람은 그저 ‘거두는 은사’가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오는데 까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누군가 여러 사람이 지속적으로 그에게 전달한 그 복음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 날 그 마지막 사람이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를 나왔을 뿐이다. 마지막에 교회에 데리고 온 사람이 다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아니다. 그는 그 거두는 일에 쓰임 받았을 뿐이다. 실제는 하나님이 그 불신자 한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오기 위하여 엄청난 뒷작업을 하셨던 것이다.

     

재밌는 사실이 있다. 그렇기에 성경은 전도에 실패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모두 한 가지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같다. 상급도 차이가 없다(고전3:8) 왜냐하면 어차피 그 사람을 믿게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29절) 이를 깨달은 자는 내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교훈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자랑을 한 가지 씩 해 보라.(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좋음)

3. 재능과 노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라. 이 둘이 낳은 각자의 결과는 어떠한가.

4. 악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을 보면서 갖는 평소의 생각은 어떠한가.

5. 전도가 어려운 이유와 전도에 실패한 경험과 성공한 경험을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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