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20장으로 끝나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요한의 기록 목적이 마지막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듯이 21장을 삽입했다. 무슨 이유인가.
● 21장의 의미
20장까지를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해야 할 모든 기록이 다 있다. 전도, 병고침, 복음 전파, 십자가 고난과 부활까지 다 있다. 그 후 예수님은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한다. 그것은 제자들의 사명이고, 그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그렇기에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의 연결고리가 21장이다.
그런데 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베드로의 배신 문제이다. 예수님을 대중 앞에서 배신한 베드로가 이 후에 이 사명을 이어가는 것이 맞는가의 문제이다.
같은 제자들은 3년간 동고동락한 관계이기에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후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다르다. 특별히 베드로가 이 그룹의 지도자라면 더욱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이 21장을 넣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용서했다는 것이다.
요한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부활의 주님과 베드로가 만났고, 이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그가 여기서 주님께 용서를 받고, 사도로서의 사명과 지위가 온전히 회복되었고 자신이 이 일에 증인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갈릴리 호수인가. 왜 예수님이 이곳에 나타나신 것이고, 왜 제자들은 이곳에 온 것인가.
1) 제자들의 상황
많은 경우에 21장의 제자들이 호수로 가서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생각한다. ‘뜻하지 않게 예수님을 잃어버린 제자들이 큰 실의에 빠지고,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본업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이 본문의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마자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이미 두 번 목격한 후이다. 문을 닫아걸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이 후이다.(20장)
그렇기에 지금의 이 상황은 예수님을 잃어버려서 실의에 빠져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것 보다는 혼동이다. 모든 것이 정리가 하나도 안 된 것이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도 않으셨다. 그렇다고 함께 있지도 않으신다. 그렇기에 이들은 다시 이스라엘 독립을 목표로 다시 뭉쳐야 하는지, 아니면 본업인 어부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이다. 그런 상태로 그냥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호수로 온 것이다.
이 때 이들은 몰랐다. 그 갈릴리 바다가 주님이 죽기 전에 ‘내가 이곳에 먼저 가서 너희를 기다리겠다’고 이미 약속한 장소라는 것을...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실 때에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모두가 나를 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바로 이어서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었다.(마26:32) 그런데 왜 제자들이 기억을 하지 못할까. 그것은 이 말씀을 하신 후의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주 충격적인 말을 한다. 그것은 ‘네가 오늘 밤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것이었다.(마26:34) 제자들이 모두 다 주를 버린다는 것 역시 놀라운 말인데, 수석 제자인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부인한다는 말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 후에 갈릴리로 가신다는 말이 안 들어 온 것이다.
‘갈릴리로 가리라’하신 이 구절로 인하여 많은 학자들이 21장에 제자들이 갈릴리로 간 것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을 만나러 가기 위하여 갔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를 갖고 갈릴리로 간 상황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베드로 혼자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고 제자들이 따라 간 것이다.(3절) 전혀 이들 사이에 예수님의 만남에 대한 언급도, 기대도 없다.
더욱이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났을 때의 상황을 보면 그들이 못 알아 봤다. 후에 호숫가에 서 있는 누군가의 말에 따라 많은 물고기를 잡은 후에 그가 주님이라는 것을 요한 만이 알아 봤다.(7절) 기대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베드로는 사명감으로 갈릴리로 간 것이 아니었다. 그냥 간 것이다. 크게 생각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약속에 이끌림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녀는 하나님이 끌고 가시고자하는 방향으로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2) 지역적 특징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의 사역 때에 주 활동 지역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갈릴리는 ‘이방의 땅’으로 불린 지역이다. 흑암, 사망의 땅, 그늘에 앉은 자들의 땅으로 불렸다.(마4:15,16) 멸시, 천대, 경멸과 조롱이 상징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굳이 제자들과의 재회를 갈릴리에서 하는가.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하면 효과적이지 않은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복음이 필요한 곳은 갈릴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와 같은 자, 꺼져가는 등불 같은 자,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을 찾아가신다. 그것이 복음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십자가 은혜이다.
특별히 이 갈릴리 바다는 베드로를 처음 부르신 곳이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는 약속을 하셨다.(마4:19) 그 약속을 회복시키러 갈리리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에 당시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 가장 비천하고 낮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그를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예전에 했던 그 약속을 완성시키신다. 그렇게 미천하고, 미련하고, 상한 자를 회복하는 의미를 담은 곳. 그곳이 바로 갈릴리 호수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제자들의 상황 속에 놓여있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은가
3. 내가 내린 실패의 선택이 후에 돌이키면 가장 복된 선택이었던 것이 있는가. 나누어 보라
4. 예수님이 비천한 곳에 찾아오신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5.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하여 갈릴리로 오셔서 회복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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