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은 구약의 인물 중에 예수님을 가장 닮은 인물이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 이삭 vs. 예수님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본다. 출생과 관련된 공통점이 있다. 이삭과 예수님 모두 하나님께서 미리 이전에 말씀한대로 태어난 ‘약속의 자녀’이다.(창12:2,사7:14) 또한 두 사람 모두 ‘기적으로 출생’했다. 이삭은 부모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생식 능력이 죽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났고(롬4:19),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했다.(마1:18,갈4:29)
또한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공통점이 있다. 이삭은 아버지에 의해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 제물로 드려졌었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 제물이 되었다. 모리아 산과 갈보리 산은 동일 지역이다. 이런 공통점으로 인하여 이삭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이삭은 ‘말씀대로’ 태어났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 ‘말씀대로’의 의미
1절에 ‘말씀하신 대로’가 두 번 등장한다. 그런데 원어는 이 두 단어가 다른 단어이다. 첫 번째 ‘말씀대로(히.아마르)’는 말하는 행위를 말한다. 두 번째 ‘말씀대로(히.다바르)’는 그 말이 성취된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네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아마르)이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이루어진 것(다바르)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루셨는가.
그것은 ‘사라를 돌보시는(히.파카드) 방법’으로 이루셨다.(1절) 그런데 여기서의 ‘돌봄(파카드)’의 본 뜻은 ‘찾아오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줄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아들을 주실 것인가. 그것은 이들을 직접 찾아와서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하신 약속인가.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하셨다. (창18장) 그 때 사라가 웃었다. 웃는 사라에게 하나님이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겠다. 그 때 아들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창18:4) 그리고 1년이 지나서 그 약속대로 ‘그가 왔다’는 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찾아오셨고)’이다.(1절)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 그의 말이 곧 능력이기에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말로하지 않고 직접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구원해 낸다.
그 예로 룻기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사 양식을 주셨다’고 하셨다. 여기에 쓰인 ‘돌보사’가 바로 ‘찾아오셨다’는 단어 ‘파카드’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근으로 백성들이 고생을 하자 직접 찾아오셔서 양식을 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고통 속에 있는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와 인간을 직접 방문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그 예수님의 탄생의 모습을 2천년 전에 이미 이삭의 탄생을 통하여 모형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이스마엘과 이삭과의 관계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왔고, 할례도 받았다. 그렇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통해서 나는 자가 그의 자손이라 했기 때문이다.(12절) 같은 아브라함의 씨인데 왜 이스마엘은 아닌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빚은 자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만든 자녀가 아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 뜻대로, 자기의 능력으로 낳은 자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자녀)은 내 노력, 내 힘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은혜로 탄생한 자녀이어야 한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이스마엘과 이삭을 이렇게 비유를 했다. 이스마엘은 시내산 율법의 자녀이고, 이삭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갈4:22~31)
이 두 사람의 신분은 같은 아버지이지만 어머니에 의하여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율법과 복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어디에 속하는 것에 따라 그 신분은 엄청난 차이를 준다. 내 의지로 내가 노력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녀가 아니다. 종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 종이다. 반면에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여 탄생된 자녀, 주의 은혜로 태어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을 받는다.
기독교 신앙에는 약속된 복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뿐만이 아니다. 내가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시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리까지 인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나에게 행하시는 그 근거는 나로 인함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왜인가? 내 노력과 내 의지로는 선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전체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십자가를 근거로 복을 얻는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왜 이 사람이 이렇게 복을 받았을까...나도 무엇을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고에서 멈춰야 한다. 그들이 받는 복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봐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해서 복을 얻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신자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헤아려 보니 말할 수 없는 감사가 터져 나와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 주를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복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섬김과는 전혀 다른 수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내가 주께 하는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어 그 안에서 넘쳐나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복음을 깨달은 자의 삶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방향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이삭이 예수님을 가장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3.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로만이 아닌 직접 찾아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4. 이스마엘은 쫓겨났다. 이 이야기를 접할 때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5. 내가 이미 복을 받았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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