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된 병자가 안식일에 고침을 받았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제정한 것이다.(막2:27)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안식을 알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고침을 받은 병자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자를 나무라며, 그 고친 이가 누군가를 추궁하고 결국에는 안식일에 일을 한 범인을 색출하여 박해를 가했다. 하나님께는 왜 안식일을 제정하여 지키라고 하셨던 것이었을까.
● 안식일의 의미
안식일의 기반은 천지창조이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셨다. 그 말이 7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하셨다.(창2:3) 그렇다면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을 안했다는 말이 아니다.(요5:17)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앞서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한 모든 것이 더 이상 손댈 필요 없이 완벽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7일째에 안식하셨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그 분의 완전함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지는 완전합니다’라는 것과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혼자 하셨다’는 것을 메시지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 중요한 안식일을 마구 깨고 계시는가. 그것은 안식일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면 알 수 있다. 먼저 안식일은 두 가지를 예표 한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창조이고, 두 번째로는 예수님의 초림을 통한 구원 사역을 의미한다.
어디에 나와 있는가. 이 안식일의 개념은 후에 창조의 의미에 다른 뜻이 더해진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너희를 건져낸 구원해 낸 것을 기념하라는 것이 더해진다.(신5:15) 이 모세는 바로 예수님의 모형이요, 그림자이다.
요즘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주일을 지킨다. 그렇다면 주일은 무엇을 예표 하는가. 그것은 구원에 관한 것이고, 넓게는 예수님의 재림, 즉 다시 오심을 예표 한다. 그렇기에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 후로는 초대교회부터 안식일 대신에 주일에 모이기 시작했다.
왜 주일에 모이는가. 왜냐하면 이미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초림을 예표하는 안식일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 예표가 주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그 만을 통한 구원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안식일과 주일의 공통점도 있다. 안식일이 ‘하나님이 혼자서 완벽하게 천지를 만드셨다’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주일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 사역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혼자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일부로 안식일을 박살내고 계신 것이다. 실체가 왔으므로 그림자를 부수는 작업을 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안식일을 통한 그리스도의 초림을 보지 못했다. 또한 안식일이 사람의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위하여 있음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규범, 그림자만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고침 받은 병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38년 된 병자가 치유된 모습을 보며 그 기쁨에 동참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율법을 어긴 행위라는 지적을 한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그 내용과 형식에 묶여서 이 사람이 죄를 지었느냐, 안 지었느냐에 관심이 더 많다. 이것이 율법에 사로잡힌 자들이 짓는 가장 큰 실수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안 지켜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지켜야 한다. 안 지켜도 우리가 한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수준으로 갈 수 있다. 그렇기에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이 고침 받은 병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 구원 이후의 신자의 삶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고 지키라고 하셨다. 이 거룩(히.코데쉬)의 의미는 ‘구별하다. 구분하다. 분리하다’의 뜻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어떤 행위의 고결함이나 성스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의 무리와 다르게 구분할 수 있다면 거룩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불신자들과 구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성경읽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찬송하기 등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 티가 나지 않는다. 이웃과 동료들이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일을 다른 날과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자녀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방법은 많이 있다. 주일에 물건을 사지 않는 것, 온 가족이 매주일 짜장면을 먹는 법, 주일날 만큼은 자녀들에게 화내지 않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여간 어떻게든 다른 날과 다르게 확실하게 메시지화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매주하기에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손쉽게 불신자와 자녀들에게 주일을 구분하여 메시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혼동이 없다.
사실 예배는 집에서, 길에서, 산에서 드려도 된다. 이 모든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메시지화 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가장 쉬운 방법은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보는 것이다. 그것으로 주일이 다른 날과 확실하게 구별되게 할 수가 있다.
신자는 이 주일을 지키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혼자 이루셨다. 우리에게 죄의 짐을 지우지 않고 그것을 혼자 행하셨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의 보혈로 완전히 이루셨다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신자는, 이 메시지를 요구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율법에 묶인 고민이 아니다. 단지 신자로서 행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요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주일을 잘 치장하여 제 삼자에게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 읽지 못하는 것이다. 내 삶의 한 부분인 주일을 그 분의 날로 구분하여 지킬 때에 참된 안식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주일에 예배당에 오는 것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나누어보라.
3. 내가 누군가를 지적하고 평가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라 생각하는가
4. 내가 가장 묶여 있는 율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5. 내 이웃 혹은 가족들에게 주일을 거룩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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