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오르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성경을 가르치셨다. 당시에 유대인이 사용하던 언어는 아람어이고 성경은 히브리어였다. 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비천한 동네의 목수가 어찌 히브리어 글을 아느냐고 놀랐다.(15절) 왜 이들이 이렇게 반응을 했는가.
● 유대인들의 반응의 이유
예수님의 가르침이 평소에 유대인들이 가르치던 내용과 완전히 배치가 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았다. 또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에 할례를 행했다. 만일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어도 할례를 행했다. 그것은 죄가 아니었다. 생명과 건강이 우선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모세가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했음을 말하며 생명과 건강이 우선가치를 둔 것이 율법의 기준임을 제시했다.(22절) 그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의 전신을 온전하게 한 것이 옳은 일인데 ‘왜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물었다.(23절)
유대인들은 이 예수님의 논리를 대항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것과 전혀 상관없는 예수님의 가족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비천한 갈릴리 출신의 목수 아들이 한 히브리 성경 해석은 믿을 수 없다고 몰아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옳은 판단’을 하라는 것이었다.(24절) 옳은 판단이란 율법의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해가 없는 단순한 순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율법에는 신자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신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한다.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신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말라’라는 율법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자가 신자이고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 37절의 의미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37절) 이 구절을 해석하기에 앞서 정리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여기서의 배는 ‘복부’를 의미한다. 유대인의 문화에서 배는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정서와 전인격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그 믿는 자에게서 끊이지 않는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충돌이 생긴다. 끊이지 않는 생수를 공급하는 것은 예수님 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에게서 그 일이 가능하다고 말을 하는가.
이 말을 해석할 수 있는 키는 예수님이 이 말을 언제 하셨는가가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 말을 명절 끝날에 하셨다.(38절) 여기서의 명절은 초막절이다. 초막절 기간에 유대인들은 7일간 천막에서 생활을 한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들을 돌보신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기간에 유대인들이 행하는 일 중에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제사장이 성전의 번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이다. 이 7일의 기간에 제사장은 실로암 연못에서 매일 물을 길어다가 번제단에 물을 붓는다. 그런데 8일 째는 번제단에 물을 붓지 않는다.
히브리 문화에서 7일은 완전수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로 일 년 365일 아무리 물을 부어도 결국에는 마르게 될 것을 의미한다. 다시 목마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8일째 성전에서 일어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37절) 또한 ‘그것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38절)
이 말은 곧,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갈증과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채워지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 8일째의 빈 번제단을 예수님이 영원한 생수로 마르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특별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믿는 자’에게서 흐른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생수는 예수님에게 나오는 것이 맞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예수님이 영생하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셨다.(요4:14)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인간인 ‘믿는 자’에게서 흐른다고 하셨는가.
그것은 요한의 해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요한은 이 일이 이 땅에 오실 ‘성령’을 의미한다고 한다.(39절) 이 예언된 성령님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이 땅에 임한다.(행2:1~4) 그 임하신 성령은 이 후로는 신자 안에 내주하신다. 즉, 우리 안에 계신다. 그리고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결국에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되는 것이다. 성령님이 내 전 인격을 주장하고 관장하여 내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생명수로 채워 주신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이 약속에도 불구하고 신자 중에 여전히 목마른 자들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신자가 하나님께 바라는 요구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수의 가치 기준이 달라서이다. 우리가 갖는 세상의 가치는 언제나 변한다.
그렇기에 그것으로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생수는 ‘은혜’이다. 신자 개인의 어떤 모양과 형편 속에서도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인생으로 빚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이고,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이기는 승리이며, 우리가 가진 세상을 대하는 실력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사람을 대할 때에 외모(그가 가진 조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가.
3. 하나님은 내가 신자로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 같은가.
4. 내가 제일 가치있게 생각하는 인생의 것은 무엇인가.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