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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Ⅹ : 수문 앞 광장의 부흥. 느8:1~10절. 09.02.2019

Writer's picture: Soo Yong LeeSoo Yong Lee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소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 우리 역시 하나님을 가장 잘 느끼고 알 수 있는 통로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이다. 우리는 책, 강의, TV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매개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하지 않다. 지식으로 이해할 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길은 예배이다. 온전한 예배 만이 하나님을 바로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란 무엇인가? 나의 삶의 변화와 부흥을 맛 볼 수 있는 예배의 key는 무엇인가?

1. 능동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과 수고 덕분에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완공이 되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공격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기뻐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허전하고 갈증이 있었다. 그들은 그 이유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성벽 건축을 하고 1주일이 지나기 전에 에스라에게 먼저 예배를 드려달라고 부탁하였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배가 필요하다. 그런데 참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능동적인 자세가 있을 때에 큰 은혜가 임한다. 예배를 향한 간절함이 예배의 생동감, 은혜를 결정한다.

살아 있는 예배의 경험이 예배당의 시설이나, 설교자에 있지 않고 마음 자세에 있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오늘 8장의 예배이다. 에스라가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성경을 펴고 말씀을 읽은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만지심과 위로를 느낀다. 하나님의 강한 임재에 통곡하며 그 분 앞에 엎드린다.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백성들이 예배를 향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배의 자세는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짐으로 느낀다. 의무감에 앉아있는 예배로 전략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배의 컨셉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배를 헌신의 제사, 희생의 제사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마다 번제단에 올려진 제물처럼 내 몸을 사르는 희생을 하나님이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맞다. 예배는 헌신과 희생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구약시대에는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수소, 양, 염소, 비둘기 등을 제물로 드렸다. 신약시대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신약의 예배도 헌신과 희생이 요구된다. 그런데,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와 차이가 있다. 그것은 그 필요한 제물을 내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대신 자신의 몸을 드리셨다. 이제는 그런 희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을 나대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다는 것이다(히9:12).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의 자리는 한 주간 힘들게 살아왔는데 다시 주일에 헌신으로 몸바치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신 일을 누리는 자리이다. 나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나며 감격하는 자리이다. 그 감격과 누림을 통해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맛보게 될 것이다.

2. 반응

아이들은 부모가 ‘깍꿍~’하면 반응한다. 그 반응이 재밌고, 행복해서 부모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행동을 한다. 그것이 곧 소통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반응함으로써 예배가 일방통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 8장의 예배가 그러했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는 에스라가 성경 읽는 것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반응했다.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댔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고 본다. 어느덧 목사는 배우이고, 성도들은 관객이 되어 있다.

이런 자세로 있는 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찬양의 뜻인 ‘할랄’은 ‘요란하게 반응하다’라는 뜻이다.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예배,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표현하는 예배가 될 때에 하나님의 만지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3. 기쁨

예배의 가장 큰 목적은 ‘찬양’이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고, 찬양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자리이고,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찬양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는 자리이다. 기쁨은 온전한 예배의 결과이다.

예배를 드리며 감동과 회개와 신세 한탄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예배의 마지막을 눈물로 끝내면 안 된다. 그렇기에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울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9,10절)’고 얘기한다.

예배는 누림이고, 교회 봉사는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기쁨에 대한 반응이다. 삶을 기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성경이 약속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히12:2)’이다. 우리의 삶에 큰 마진(margin)은 예수를 바라볼 때에만이 생기게 된다. 그 십자가를 묵상할 때 나오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의 힘겨운 모든 역사를 다 이룬 후에 제일 처음에 한 일이 예배이다. 느헤미야는 아마도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나님, 내 삶의 가장 첫 번째는 하나님입니다. 나는 성벽 건축을 시작할 때에도 양문을 먼저 세웠습니다. 성벽 재건을 다 이룬 후에도 나는 하나님이 우선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첫 자리는 항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가장 소중하다는 나의 외침을 기억해주세요”

이것이 느헤미야의 간절한 외침이었다. 우리 역시 그러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능동적으로 예배하고, 격렬하고 반응하고, 기쁨으로 주 앞에 예배할 때에 하나님의 강한 역사를 모두가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예배를 가장 방해하는 개인적인 요소들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겨 낼 수 있는가?

3. 나에게 예배는 ‘누림’인가? 혹은, ‘짐’인가?

4. 나는 예배에 반응을 잘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5. 느헤미야의 고백을 들으며 무슨 생각이 드는가?

6. 내 인생의 가장 첫 번째는 무엇인가?

7.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예배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갖게 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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