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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oo Yong Lee

주기도문 Ⅰ : 이렇게 기도하라. 마6:5-8절. 01.05.2019

요즘 현대인들이 쓰는 주기도문은 영혼 없는 주문이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뜻 없이 중얼거린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기본이기에 기본을 익혀야 하나님과의 바른 소통이 시작될 것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에 앞서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의 자세를 세 가지로 말씀을 해 주셨다.

1.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오늘 본문의 앞 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신앙인이 구제할 때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3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남이 모르게 구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즉, 누군가를 구제할 때에 다른 사람뿐 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구제를 할 때에 생각하며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구제가 몸에 배여 있기에 생각 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람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기도가 몸에 배여 있는 사람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기도가 남을 의식하는 순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동기’가 무너진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되어진 자세를 요구하고 계신 것이다.

2. 골방에서 기도하라

‘골방’의 사전적 의미는 ‘큰 방 뒤에 있는 작은 방’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성경에 나오는 골방이라는 말은 분명히 ‘밀실’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쓰인 골방은 헬라어로 ‘타메이온’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첫 번째 뜻은 ‘조제실’이다. 한국의 약국에 가면 안에서 약을 조제해 주는 그 방을 의미한다.

성막 안에는 떡상, 일곱등대, 분향단과 같은 ‘기명’들이 있다. 이 기명들을 준비하는 방이 ‘타메이온’이다.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즉, 예수님이 ‘골방에서 기도하라’라는 말은 곧,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을 그리며 생각하는 공간, 그에게 집중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주로 묵상한다. 옳다.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독교(Christianity)는 예수 그리스도(Christ)가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 분의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하는 종교는 유일하게 ‘기독교’ 하나이다. 그게 다른 종교와 구분되어지는 가장 큰 차이이다.

요한은 그의 저서에서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요14:13,14. 15:16. 16:23,24). 우리가 기도할 때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기독교의 전통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기 때문이다(딤전2:5). 물론, 성경에 보면 성령님도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롬8:26). 그럼,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령님은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할지 알지 못할 때에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신다. 반면에 예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기도의 제목을 갖고 하나님 앞에 직접 들어가는 중보자’ 역할을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intercession)’를 하시는 분은 단 한분, 오직 예수님 뿐 이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중보자’가 필요하다. 당시에는 ‘제사장’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나 다 ‘만인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의 특권이다.

또 하나의 골방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밀실’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둘만의 비밀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를 생각해 보자.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들이 알지 못하는 둘만의 공간을 자꾸 찾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골방을 요구하시는 것은 둘만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갖기를 원하시는 그의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골방의 시간을 드릴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갚으신다(reward)’고 얘기 한다(6절).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린 모든 시간들을 결코 지나치지 않고 보상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3. 중언부언하지 말라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는 사람은 기도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방의 종교는 ‘지성이면 감천이다’ 식의 내 정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말을 많이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실을 놓치면 우리의 기도가 ‘주문’이 된다. 기도는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했는가 보다 중요한 것이 얼마나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었는가가 중요하다.

어떻게 우리가 조바심을 내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신다(8절)’는 믿음이 있는 자는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 우리의 기도란 ‘구체적인 내용의 전달’이다. 하나님과 대화함으로써 나의 삶에 능력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사실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기도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말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흥분하며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눅11:1)했다. 그 요청에 의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이 ‘주기도문’이다. 내 뜻과 내 방법과 내 방향이 아닌 주님이 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자. 그때에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목도케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타인의 구제를 기억하는 편인가? 아니면 잘 잊어버리는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3. 내 기도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많은 편인가? 그런 경우와 아닌 경우 둘 다 이유를 말해 보라

4.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갖게 하는가

5. 내 기도의 시간을 하나님이 갚아주신다, 보상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6. 내 기도는 대화인가? 아니면 형식인가? 왜 그런 자세가 생기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7. 주기도문을 배우며 마음에 드는 기대와 바람을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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