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룩’을 ‘행동이나 사상 또는 인품이 고결하고 훌륭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의미는 그것과 많이 다르다. 거룩의 히브리어 ‘카도쉬’와 헬라어 ‘하기도스’는 둘 다 ‘구분되다. 구별되다’라는 뜻이다. 즉, 일단의 무리와 다르게 구분되어 구별할 수 있다면 ‘거룩하다’는 얘기이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에 신자는 모두가 다 예외 없이 거룩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구별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이 다른가? 1) 예수를 믿는 것 2) 하나님에 대한 존재의식을 갖고 있는 것 3)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이 다르다. 그렇기에 신자는 모두가 다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불림을 받는다. 이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해 보자.
고린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결코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했다. 파가 나뉘어져 있었고, 부도덕했고, 은사는 많았지만 유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들을 향해 ‘거룩한 성도’라고 칭한다(고전1:2).
‘성도’의 영어 번역은 Saint(성자, 성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정하시며 최고의 존칭으로 부르신다. 어떻게 그들은 그런 호칭을 얻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예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고전1:2).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 칭함을 입는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당하는 경우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하는 것을 자신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신다(겔36:23).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잘못했을 때에 그들을 징계하신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우리를 욕하고 비웃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이다(히12:8).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통하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하여 한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우리 안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신 것이다(겔36:26). 그것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깨끗케 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 우리 안에 ‘새로운 영’이 들어온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신자에게 임한 성령 하나님의 내주를 의미한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 분을 나의 주님과 구주로 믿는 것이다. 이 길만이 우리가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거룩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놓치고 그냥 주기도문을 외우면 그저 주문에 불과하다.
2.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삶의 방법
거룩의 의미는 ‘구별되다’이다. 그것은 신자의 삶이 불신자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무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신자들의 삶과 불신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있고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신앙의 수준과 깊이와 상관이 없다. 신자들 모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내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일 때에 우리의 삶은 그들과 확연히 다른, 구분된 삶을 살 수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거룩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내가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표시가 무엇인가?
그것은 ‘주일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사실, 예배는 집에서 드리는 것과 주일에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와 다르지 않다. 언제 어느 곳이든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피상적으로 봤을 때에 신자들이 예배를 보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길은 주일 예배의 참석 여부이다.
이웃이 봤을 때에 ‘이 옆집은 일주일에 하루는 전 가족이 단정히 하고 항상 어디를 가는데 그 날이 무슨 날인가 보면 항상 주일이더라.’ 이 사실 하나로 신자들이 예배를 보는지 안 보는지를 구분한다. 물론, 신자들 가운데 매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 하나는, 신자는 1주일에 하루는, 주일이라는 이름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는 것은 불신자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구별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에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한 내가 믿는 신을 만나러 왔다는 요식행위를 지나서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크리스찬이라는 그들과 다른 최소한의 구별이다.
예배는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이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1주일 내내 고생해서 힘이 든데, 굳이 휴일에 일찍 일어나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힘들여 봉사를 하는 모습은, 그들이 우리를 봤을 때에 가장 이해가 안 되고 해석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철저하게 주일 하루를 구분하여 예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삶.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싸 안는 것이 우리가 그들과 구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이다. 신자는 예배를 아끼고, 사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모습으로 불신자들에게 드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배를 세상에 가장 귀하고 존귀한 것으로, 최고의 가치로 여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하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역사를 말이다.
이것이 오늘 주기도문에서 말한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고 우리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이다. 그 현장의 가치를 우리가 높일 때에 그 모습을 통하여 불신자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나는 내가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에 오는가? 그런 경우와 아닌 경우 둘 다 이유를 말해 보라
3. 나의 마지막이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 어떤 사람으로 인식이 되기를 바라는가?
4. 하나님이 나를 특별하게 여기신다고 느껴진 경우가 있다면 언제인가?
5.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배를 드렸을 경우에 마음이 어떠한가?
6. 남들이 나를 보며 신자라고 알 수 있는가? 왜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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