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젠틴에 계신 어머니가 둘째 아들의 ‘위임식’에 맞추어 아들이 사는 버지니아에 방문하셨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도착하자마자 행사 때문에 잘 챙겨드리지도 못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알젠틴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것입니다.
덜컥하는 마음에, 날이 곧 풀리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아름다운 버지니아에 봄 경치를 맛 볼 수 있을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 얼굴 보고, 어떻게 사는지 봤으니 더 바랄 것 없이 족하다며 기어코 10일 만에 쿨하게 떠나셨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본인이 중년의 커리어 우먼인 듯이 ‘곧 다시 오면 되지’라고 말씀하시고는 ‘바이’하고 공항 게이트로 들어가셨습니다.
어머니를 배웅하고 벤자민을 유스 모임에 내려놓고, 아내가 저를 집에 드랍하였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저에게 아내가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 안 계셔서 좀 그렇겠네... 혼자인데...’ 했습니다. 사실 별생각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쿨하게 웃으며 떠나셨으니 저도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거실의 불을 켰습니다. 소파가 보였고, 그곳에 어머니가 누워계시던 흔적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눈물이 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한참을 하염없이 혼자 울었습니다. 울다 보니, 이 울음이 그저 단순히 어머니를 보는 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몸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거대한 성 같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에 예정 보다 귀국일을 서두르셨다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달래던 중, 최근에 교우 중에 부모님을 여의셨던 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한 초등학교 친구가 아버지를 여의고 난 후 ‘난 하나도 안 괜찮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멀쩡히 살아계시고, 그리고 건강하게 웃으며 헤어져도, 그저 약해지는 모습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그 분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평소에 상을 당하신 분들의 마음을 익히 아는 것처럼 말했던 제가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난 아직 멀었구나...’하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또 배우고, 이렇게 또 고개 숙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어려운 일을 당한 교우들과 어르신들을 향해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살피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또 실수하고 또 실패할 줄 알면서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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